[파생상품시장 개설 20돌] 한국 파생상품시장 이대로 좋은가
'12'(세계 거래량 순위). 오는 3일 스무살을 맞는 한국 파생상품 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2011년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은 현재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선물회사 등 관련 일자리도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개미들의 막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박(gambling) 수준이던 투기거래에 정부가 메스를 댄 결과이다. 시장의 건전성은 좋아졌지만 과도한 규제는 자본시장의 생태계까지 교란시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파생상품에 양도소득세까지 부과하면서 시장은 빈사상태에 있다. ◆한국 파생상품시장 이대로 좋은가 파생상품(Derivatives)은 주식, 채권, 환율, 금리, 원자재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기초로 만든 금융상품이다. 대표적인 것이 선물(futures), 옵션(option)이다. 파생상품시장이 문을 연 것은 지난 96년 5월 3일. 시기 상조라는 비난과 잦은 제도 변경 등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 최초의 파생상품시장인 선물시장이 문을 열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파생상품 하루 평균 거래량은 2011년 1584만건에 달했다. 이때까지 3년 연속 세계 1위(거래량 기준)의 자리를 지켰다. 사람이 몰린 만큼 시장 또한 무질서 그 자체였다. 2010년 11월 11일 일어났던 '도이치증권 사태'. 이날 코스피가 장 마감 직전 도이치증권 창구로 나온 예상 밖의 '매물 폭탄'을 맞아 53.12포인트(2.7%)나 떨어졌다. 이 매물은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프로그램매매를 통해 나온 것이다. 도이치증권은 금융당국에 의해 6개월 영업정지 처분과 함께 임직원이 검찰에 기소됐다. 개미들은 '로또'를 꿈꾸며 불나방 처럼 몰려들었다. 당시에는 하루 30조원을 베팅하는 일이 허다했다. 정보력과 전문지식이 부족한 데다 투자 금액이 작아 예외 없이 돈을 잃었다. 사제 폭탄사건은 당시 상황을 잘 말해 준다. 2011년 5월 12일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물품보관함에서 사제폭탄이 폭발한다. 빚독촉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이 주가 폭락을 유발해 옵션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 저지른 것. 그러나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수익이 생길 수 있는 극히 낮은 가격대의 '외(外) 가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시장 질서가 혼란에 빠지자 정부는 결국 개인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칼을 빼든다. 정부는 2009년 외환차익거래 증거금을 올렸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 대표 파생상품인 '코스피200옵션'의 거래단위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린다. 또 사전교육 30시간, 모의거래시간 50시간을 이수하고, 3000만원 이상을 예탁한 경우에 한해 개인투자자에게 선물 거래를 허용했다. 그 결과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는 꼴'이 됐다. 2011년 860만건에 달했던 코스피200옵션 거래량은 2012년 154만건으로 급감했다. 코스피200 선물 거래량도 21만건에서 12만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한국 파생상품 거래량 순위는 지난해 세계 12위로 주저앉았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정부가 우정사업본부와 국민연금의 파생상품 차익거래에 증권거래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거래량이 급감하고 시장이 거의 죽었다"며 "이로 인해 외국인들이 변동성이 큰 다른 시장을 찾아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빈대 잡으려 초가만 태우나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은 꺼저가는 시장을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최 이사장은 올해 미국 플로리다 보카라톤에서 열린 'FIA 국제선물산업 콘퍼런스'에서 대표단을 파견, 전 세계 거래소 파생상품시장 관계자를 상대로 다양한 홍보 활동과 협상을 진행했다. 강기원 파생상품시장본부장 등 한국거래소 대표단은 고객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세일즈 활동을 전개했다.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치열한 물밑 협상을 진행했다. 강 본부장은 "이제는 미국, 런던, 중국, 동남아 등 지구촌을 무대로 한 파생상품 고객 창출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한국거래소의 기업공개(IPO)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정보저장소(TR) 도입을 위해 세계 최대 TR사업자인 DTCC그룹과도 손을 잡았다. 상품 교류와 상품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달에는 유럽증권감독청(ESMA)으로부터 증권·파생상품 거래에 관한 적격청산소 공식 인증을 받았다. 이번 인증으로 국내 시장에 참여중인 골드만삭스와 BNP파리바은행 등 장외 10개사, 모건스탠리증권 등 장내 3개사는 활동 제약 요인이 해소됐다 6월에는 유럽 대표지수인 '유로스톡스50'(EuroStoxx5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을 국내 증시에 상장된다. 한국의 대표지수인 '미니 코스피200'을 기초로 하는 선물을 유렉스에 상장된다. 미니 코스피200 선물·옵션 등 다양한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또 파생상품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시장 진입 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다. 두터운 빗장과 과세로 파생상품시장이 쪼그라들면 자본시장 생태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실제 파생상품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 이후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혀 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과세로 기대되는 세수효과는 절대적인 기준에서 크지 않고 기초자산의 거래 위축을 초래해 결국 증권거래세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