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험금 논쟁](下)'상상초월' 지급액 때문?…"당국 전수조사해야"
생보사, 인명경시 풍조 확산 우려 "안그래도 자살률 1위국인데…잘못된 시그널 줄 수 있다"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하면)가입자의 자살을 불러올 수 있고, 특히 암 등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형 생명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재해사망 보험금 지급이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뜩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자살보험금 지급이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단 분석이다. 금융당국 역시 보험 계약자에 대한 보호를 우선하고 있지만, 자칫 사회적으로 자살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염려한다. 때문에 당국은 그간 자살보험금 지급 건에 대해 생보사에 보험금의 60~70% 수준을 지급토록 권고해 왔다. 당국의 미온적인 반응이 반복되자, 지난 21일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 지급 감독 수위를 보다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소연은 이날 성명을 통해 "금감원은 자살자 중 재해사망특약을 부가한 소비자를 전수 조사해 미지급보험금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찾아 보험사로 하여금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2465억원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자살 관련 미지급 보험금은 2465억원(2980건)이다. 이 중 소멸시효(2년)가 지난 계약만 2003억원(2314건)으로 전체의 80% 수준이다. 보험사별로 살피면 ING생명이 837억원(57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생명 431억원(619건), 교보생명 213억원(254건), 동부생명 123억원(99건), 알리안츠생명 122억원(114건) 등 순이다. 다만 시민단체들은 금감원의 조사에 대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장 '업계 1위' 삼성생명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금액이 ING생명보다 낮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생보사들이 종신보험을 가입한 계약자 중 재해사망특약을 부가하고 자살한 경우의 통계만을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종신보험 이외 연금·건강·상해보험 등에도 의무부가 특약 또는 독립특약(임의부가)으로 거의 전 생보사가 해당 상품을 판매했는데, 금감원의 조사에서 누락됐다는 것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생보업계 '빅3'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버티는 것은 시효를 무시하고 전수 지급할 경우 회사당 수천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되기 때문"이라며 "금감원은 생보사에 검사인력을 파견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멸시효 폐지 or 10년 연장 방안 추진 실제 금감원이 지난 2월 생보사들로부터 보고 받은 자살보험금 미지급 금액은 재해사망특약 자살보험금에 관한 총액이 아니다. 한국보험학회에서 주계약과 특약으로 나뉜 보험금 지급 여부에 따라 분류해 놓은 4가지 유형 중 2번째 유형에 대해서만 조사를 벌인 금액이다. 나머지 3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상품에 대해선 그 어떤 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현재로선 대략적인 규모 파악이 힘든 상황이다. 금소연 관계자는 "특약이라는 특성 상 암보험과 연금보험 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그 규모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당국 차원에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와 같이 '실체 없는 추측'만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욱 사무처장은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그 존재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이라며 "현재 권리 구제 역할은커녕 오히려 생보사들의 바람막이 역할만 자행하고 있는 꼴이다"고 호소했다. 금감원은 이처럼 시민단체의 강도 높은 문제 해결 요구가 잇따르자, 사망보험금 소멸시효를 폐지하거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멸시효 경과의 귀책사유가 보험사에 있는데도 지급의무가 없어진다면 불법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을 용인하고 계약자 신뢰를 저버려 보험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법은 상사간 거래 계약을 다루지만 보험은 개인과 보험사가 맺는 계약이므로 소멸시효를 없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어렵다면 민법상 기준인 10년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현행 상법상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는 3년이다. 지난 3월 이전까진 2년이었다. 금감원은 앞으로 금융위 등과 협의해 구체적인 법 개정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또 "소멸시효나 특약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다수 보험수익자 구제를 위해 법원의 민사적 판단과는 별도로 보험업법에 따라 미지급에 대해 엄중히 조치하고 소비자피해 구제를 적극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