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달러]달러표시 부채 많은 기업, 부채 비상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금융완화의 정도가 점차 줄어 들면서 국제금융 여건이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 경제주체와 정책당국은 레버리지(차입투자)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이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부채, 특히 기업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최근 이들 국가의 높은 레버리지가 금융안정의 리스크로 부각했다."(시닷트 티와리 IMF 전략 및 정책리뷰국장) '달러'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12월 금리 인상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이는 '슈퍼달러'의 귀환을 예고한다. 한국과 같이 달러표시 부채가 많은 신흥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부채 상환 비용이 더욱 커져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달러표시 부채 상환 불확실성이 커지면 더 많은 글로벌 자금이 신흥시장을 이탈해 외국에서 달러로 돈을 빌린 신흥시장 기업들이 기존 부채를 연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년 만기 외화 부채 870억달러 13일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2016년 만기 도래 외화표시채권은 870억달러에 달한다. 신흥국 중 중국(2500억달러)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18개 신흥국 중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는 한국이 210억달러로 가장 많다. 중국(90억달러), 브라질(90억달러), 멕시코(70억달러) 보다 많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글로벌 경제 불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염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 강하게 연동돼 움직이는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 변동성도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펼쳐질 슈퍼달라 시대에 대한 염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신흥국 경제 모멘텀이 꺾이면서 성장 둔화세가 뚜렷해진 데다 강달러 추세가 심화되면서 달러 부채를 많이 얻어 쓴 신흥경제 기업들이 줄도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화 부채는 금리 상승 위험 뿐만 아니라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이 더 해 질 수 있다. 이미 불안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신흥시장 고수익 회사채 부도율은 3.8%로 미국의 2.5%를 웃돈다. 4년전 각각 0.7%, 2.1%와 대조된다. NH투자증권 강현철 글로벌 자산전략부장은 "신흥국 중 외채 비중이 높은 금융업과 정유·가스업, 그리고 금속채광업도 주의해야 한다"며 "유가 하락에 따른 원자재 수요 감소로 관련업종의 구조조정이나 디폴트 압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훙 트란 IIF 집행상무이사는 "한국 비금융 기업은 보유중인 부채의 수준이 높은데다 12%는 외채여서 금리인상과 원화약세, 경기둔화와 동반되면 기업들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금융 안정 보고서' 를 통해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로 발생한 충격은 세계 경제의 '탈선'과 주식시장 폭락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고서는 선진 또는 신흥시장에서 발생한 충격은 세계 자산시장의 요동과 유동성 축소를 불러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정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7년까지 2.4% 줄어들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IMF는 내놨다. ◆외화 부채 줄이고 위험관리 해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단식 기업구조와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하던 대기업들이 뿌리채 흔들렸다. 30대 재벌그룹 평균 수익률은 1996년 0.2%에 불과했고 1997년엔 -2.1%로 추락했다. 1997년 초엔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이 잇달아 부도를 맞으며 대마불사 신화도 무너졌다. 금융가라고 다르지 않았다. 돈을 빌려간 기업들이 쓰러지고, 빚 상환을 늦추자 채권자인 금융회사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리스크 관리 개념 없이 막무가내로 돈을 퍼주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 타격은 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금사와 상호신용금고다. 외환위기의 진원지는 경상수지 적자였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아무도 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1996년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달했다. 1992년 629억달러였던 대외 지불 부담은 1996년 1643억달러로 연평균 27% 증가했다. 대부분 금융회사의 외화 부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15년 한국경제의 위험징후는 바로 부채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보미 연구위원은 "신흥국 통화의 약세로 이들 국가 기업의 외화표시 부채 실질 상환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은 이들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국내 기업은 위험에 따른 파급 효과를 고려해 외화부채를 줄이고 환위험 관리를 통해 유동성을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은행권 달러부채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국제금융센터 김용준 연구원은 "다른 국가 통화와 달리 원·달러 베이시스스왑(Basis Swap) 스프레드는 2012년 이후 (-) 폭이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면서 "우리나라 신용도가 향상된 가운데 국내 은행권의 달러부채 증가 규모 역시 제한적인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1700억달러에 가까운 은행권 달러부채는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 자칫 자본시장에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2008년 1년 동안 무려 코스피가 40.7% 폭락하는 경험을 했다. 당시 국내 은행의 외채 만기 연장이 중단되면서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간 462억 달러 규모의 외국 자본들이 빠져나갔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200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40%나 하락했다. 한편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미국 밖에 있는 달러 표시 채권 규모는 9조7000억달러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말 5조6000억달러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