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있던 4일, 윤석열 정부를 반추하며 떠올린 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2022년 5월 이후 1060일간 우리는 지록위마의 세상에 살았기에. 지록위마의 세상에서 기자는 무엇을 쓰고 있었을까 반성해본다.
사슴을 잃어버리자 세상은 극단적으로 치달았고, 반지성주의가 독약처럼 퍼져갔다. 그동안 '주장'을 '사실'로 둔갑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바이든이라는 이름은 진영에 따라 '날리면'이라는 탈을 썼고,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재가하지 않으면서 '여야 합의'가 헌법의 상위 개념인양 굴었다. 파시스트라고 부르기에 아주 좋은 '덕목'을 갖춘 어떤 이들은 헌법재판소 근무자의 이름만 보고 중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떠들었다.
이런 식으로 굴러가던 세상은, 결국 44년만의 비상계엄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질서를 흔들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라는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 "경고성 계엄이었다" "정치인 체포 지시는 내린 바 없다"는 변명을 늘어놨다.
사실 이런 변명을 안 믿어야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우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 주장을 믿고, 적극적으로 퍼트렸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 역시 금과옥조처럼 믿었다. 이것 역시 사슴을 말이라 하는 행위 아닌가.
많은 매체는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주장을 비슷한 분량으로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탄핵 반대파의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해도 되는지를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에 비해 실제 결과물은 미약했다.
헌법재판소를 위협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매도하고, 야당이 하는 일이 내란이라고 주장하는 걸 그대로 보도해도 됐을까. 진실과 허위를 나란히 놓는 건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외면했던 건 아닌가. 잘못된 주장을 전하면서 상대편 주장을 병렬해 정쟁처럼 취급한 건 아닐까. 결국 기자도 관성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며 지록위마의 세상에 일조했던걸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작지만 집요한 통증이 내내 남는다.
이제 대통령은 파면됐고 봉황기는 내려졌다. 하지만 이 고민은 앞으로도 안고 가야할 것 같다. 그래야 말로 '변신'했던 사슴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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