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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M-커버스토리]AI디지털교과서, '교육자료'로 지위 격하…찬반 논란 여전

법 개정으로 참고사와 같은 '교육자료'로 규정
교육부, 즉각 반발…재의요구 건의
시·도 교육감 성향 따라 도입 여부 갈릴 것
교사, 학부모 등 현장 혼란 가중
전문가, '학습효과 검증·부작용 방지' 시급

지난 12월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AI 디지털 교과서 영어 최종 합격본의 시연 행사에서 관계자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의 주요 기능을 토대로 참여형 수업 및 학생 맞춤교육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오는 3월 도입 예정이었던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단순한 '교육자료'로 격하됐다. AI 교과서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교육계와 학부모, 에듀테크 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교육 혁신의 도구에서 '교육자료'로

 

AIDT는 학생 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춰 학습이 가능하도록 AI 기술을 이용해 학습자료와 지원 기능을 실은 디지털 기반 교과서다. AI는 학습자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자주 틀린 문항의 주요 개념을 다시 설명하거나 비슷한 문제를 제시하는 등 맞춤형 학습 정보를 제공한다.

 

9일 <메트로경제> 취재를 종합한 결과, AIDT는 법 개정으로 인해 필수 교재가 아닌 선택적 학습 보조 자료로 그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도입 3개월을 앞두고 교육부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교육부는 2023년 2월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 발표 이후 2년 넘게 AIDT 도입을 준비해 왔다. 애초 계획은 2025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AIDT를 우선 도입하고,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검정 심사를 통과한 12개사 76종의 AIDT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AIDT를 참고서와 같은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선정해야 하는 교과서와 달리, 교육자료는 의무 채택 대상이 아니며 학교 재량으로 운영위원회를 거쳐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각 학교는 AIDT 활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교육부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AIDT가 시행 직전에 무산될 경우 현장 혼란과 학습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개정법안 통과 직후 "학교 현장과 사회적 혼란이 우려된다"며 재의 요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자료는 교과서와 달리 무상·의무 교육 대상이 아니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며 "학교별 재정 여건에 따라 사용 여부가 달라져 학습 격차가 심화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교육감 성향에 따라 엇갈리는 도입 전망

 

AIDT의 활용 여부는 시·도 교육감의 성향과 정책 방향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인천, 세종 등은 AIDT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대구, 경기, 제주 등은 예산을 확보해 전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 7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AIDT를 교육자료로 먼저 효과를 검증한 뒤 교과서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은 "법적 지위와 관계없이 AIDT를 교과서처럼 활용할 계획"이라며 전면 도입 의지를 밝혔다.

 

이 외에 울산과 전남 등 4개 지역은 선도학교 중심으로 시범 운영할 방침이다. 나머지 6개 지역은 오는 17일 열리는 AIDT 관련 청문회 이후 상황을 지켜보며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계 "디지털 과의존·문해력 저하 우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지난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AI 디지털교과서 거부' 교사 선언 기자회견을 하며 AI디지털교과서 도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AIDT 도입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교육 전문가와 학부모들은 AIDT가 학생들의 집중력과 문해력을 저하시켜고 이로 인해 학습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꾸준히 AIDT 도입을 반대해 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은 지난달 1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AI 디지털교과서 거부' 기자회견을 열고 "검증되지 않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전교조 등 126개 교육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AI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학부모들 역시 국민동의청원까지 제기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5월 올라온 AIDT 도입을 유보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약 한 달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교육위원회에 넘겨졌다. 이에 교육부는 "AI디지털교과서는 수업의 보조 도구일 뿐"이라며 "종이 교과서를 폐지하지 않는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데, 교과서까지 디지털 기기로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디지털 기기에 더 의존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AI 교과서가 학생들의 학습 격차를 줄일 기회라고 보고 있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지역과 학교에 따라 디지털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며 "AI 교과서는 모든 학생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듀테크 업계는 AIDT 도입이 학습 생태계를 확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는 국내 에듀테크 시장은 연평균 8.5% 성장해 내년에는 약 9조9833억원, 2026년에는 10조8319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네이버클라우드, LG CNS 등 주요 IT 기업들은 AI 교과서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교과서협회도 회원사들이 네이버클라우드를 활용한 AIDT 서비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교과서 개발 업체들은 "교과서 지위를 잃으면 업체들은 다 죽는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을 들여가며 교과서를 개발했다"면서 교육자료로 격하될 경우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해외는 아날로그로 회귀중

 

해외에서는 오히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 교육 방식으로 회귀하는 추세다. 스웨덴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이를 폐지했으며, 이탈리아와 핀란드 등에서도 교실 내 모바일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스웨덴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으나 2023년 이를 폐지하고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을 완전히 중단했다. 대신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고 종이에 글을 쓰는 등 아날로그식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학습 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실제 초등학교 4학년생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에 따르면 스웨덴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11점 하락했다. 이탈리아와 핀란드 등 일부 나라에서도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교실 내 태블릿 PC와 같은 모바일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교과서, '미래 교육의 나침반' 되려면

 

AI 디지털교과서가 '미래 교육의 나침반'이 되려면, 기대와 우려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AIDT의 효과성 검증과 부작용 방지를 위한 더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예산 부담과 인프라 문제 해결이 우선되지 않으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기술만으로는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며 "예산 문제와 인프라 개선 방안을 명확히 마련해 우려를 해소하고, 기술과 교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는 오는 17일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이 이미 처리됐지만 도입 찬반 논란이 여전히 큰 만큼 그 효과성을 다시 검증해 보자는 취지다. 증인으로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와 대구, 광주 등 일부 시도 교육감, AI 교과서 개발 업체 대표 등 18명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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