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용기와 만용 (12월12일자)
'용기(勇氣)'의 국어사전 뜻은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다. 중국말로는 위험을 두려워않는 기개를 말한다. 통속적으로는 '배짱이 좋다'란 말로 흔히 쓰인다. 영어 단어 'courage'를 우리는 용기로 표현해 쓰고 있다. 이는 위험이나 불이익을 분명히 알고도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 뜻을 좀더 들여다 보면 지극히 어렵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옳다고 여긴 일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인간의 필수덕목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용기있는 사람이 얼마되지 않는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을 흔히 '겁쟁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용기란 말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봐야겠다.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의 위험이 더 커 의심이나 두려움이 있는데도 도덕적 이유로 행동하는 용기이다. 고통, 위험, 불확실성, 협박에 직면하는 나약하지만 강인한 인간의 선택이자 의지로 볼 수 있다.
'12.3 계엄정국'에 수많은 시민들이 결연한 의지와 기개로 반민주적 폭력에 맞섰다. 12월 엄동설한에 전국 곳곳에서 거리로 나와 날밤을 지새며 저항의 기치를 들었다.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때문에 용기있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소수일 것이란 그 본래 의미는 상당히 무색해졌다고 할 만하다. 요며칠새 말없이 지내던 필부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실로 오랜만에 목격했지만 특히 눈길끄는 '용자'가 보였다. 지난주말 부산의 한 계엄반대 집회현장에서 연설한 여고 3학년생이다.
이 학생은 "막 걸음마를 뗀 제 사촌동생들과 남동생이 먼훗날 역사책에 쓰인 이 순간을 배우며 제게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여기 나와 (의견을)말했다고 알려주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라며 발언을 시작해 10여분간 비상계엄의 부당성과 기성 정치인을 비롯한 국가 지도층의 오만, 무능, 비겁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또 한국이 늘 싫어 떠나고 싶었으나 전국의 많은 시민들이 함께 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을 버린 정부는 더 이상 대한민국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가자고 촉구하며 발언을 마쳤다.
18살 앳된 소녀의 연설이 인터넷상에 회자되자 그 용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현실을 외면해온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댓글이 이어졌고 철부지같던 MZ세대 청소년들에 신뢰를 갖게 됐다는 답글도 부지기수였다. 진정한 용기는 굳센 기운, 기질, 호기, 무모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특히 기질처럼 인간 육체에 기반한 물리적 용기와는 확실히 성격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또 담화를 발표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조기퇴진을 기대했지만 현 사태의 단초를 거대야당의 잘못으로 돌리며 전혀 그럴 뜻이 없음을 밝혔다.용기가 지나치면 만용이라고 표현한다. 한자에서는 '사리를 분간하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으로도 정의한다. 애초 박근혜 특검 수사팀장과 탄핵, 검찰총장 등의 과정을 거치며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집권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보인 것은 만용이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사리를 분간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스런 정치인이란 여론이 세상 가득하다. 자신의 행동이 만용임을 깨닫고 도덕적 용기를 보여주는 소수가 되기를 바란다면 과한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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