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相計)란 쌍방이 서로 채무를 부담하고 있을 때 그 채무를 각 대등액으로 소멸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단독행위로 상대방의 승낙 필요 없이 채무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효력이 발생한다(민법 제493조 제2항). 이처럼 상계는 일방의 의사표시로 효력이 발생하므로 민법에서는 상계가 가능한 요건과 상계가 금지되는 경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492조, 제496조 내지 498조).
민법 제496조에서는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 때에는 그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해 상계를 허용한다면 고의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까지도 상계권 행사로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돼 보복적 불법행위를 유발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받을 돈이 있는 사람이 그 돈을 핑계로 상대방에게 고의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뒤, 위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받을 돈과 상계하겠다고 하는 경우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한편 이 규정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한 것이고, 고의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고의에 의한 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함과 동시에 채무불이행을 구성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과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이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대법원은 "고의의 불법행위가 동시에 채무불이행을 구성함으로써 하나의 행위에 기초해 두 개의 손해배상채권이 발생해 경합하는 경우나, 고의의 불법행위가 동시에 부당이득 원인을 구성함으로써 하나의 원인에 기초해 두 개의 청구권이 발생해 경합하는 경우 등 상계금지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수동채권이 실질적으로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채권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할 수 있는 때에는 민법 제496조가 유추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대법원 2002. 1. 25. 선고 2001다52506 판결 등 참조).
다만 최근 대법원은 "상대방의 기망으로 인해 금전을 대여한 사건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상 채권에 따른 대여금 및 이자 등의 지급을 구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496조가 유추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4. 8. 1. 선고 2024다204696 판결).
계약상 채권은 상대방의 기망행위가 아니라 쌍방 사이의 계약에 기초해 발생하는 권리다. 그 급부의 이행으로 지향하는 경제적 이익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과 동일해 양자가 경합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달리 민법 제496조가 정한 상계금지의 취지에 비춰 계약상 채권이 실질적으로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채권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할 만한 사정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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