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보다 빚이 많으면 언제라도 회생이나 파산을 임의로 선택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회생은 채무 전액을 갚을 수는 없어도 향후 10년간 일정 채무를 변제할 계획을 세워, 이를 착실히 수행하겠다는 전제 아래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파산은 파산 선고와 동시에 면책결정을 받게 되면 결정 당시 채무자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채권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채무자는 채무에 대한 모든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파산이 선고된 채무자는 일정 기간 경제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은행에서 신용카드도 개설하지 못하는 등 제약이 따르긴 한다. 대신 더 이상 어떤 채무도 변제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에 엄격하다. 특히 채무자가 일정 소득을 얻고 있고 필수 생계비용을 제외하고도 채무 일부를 지속적으로 변제할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파산을 신청한 경우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회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음에도 그저 채무 변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파산을 선택한 것으로 보일 때, 법원은 이를 '파산절차의 남용'이라고 본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통상 채무자가 충분히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해낼 수 있는 나이에 있거나, 업무 경력이 있어 취업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물론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소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산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과일도매상에서 배달업무에 종사하는 A씨는 월 76만원 가량의 소득으로 장애인인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었다. A씨는 버는 소득으로는 더 이상 빚을 변제하기 힘들다며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원심 법원은 "A씨가 1973년생의 남자로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동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 외에 다른 부양가족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씨의 노력에 따라 경제활동에 종사해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자력을 갖출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버는 소득은 평균적인 2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추가적인 지출도 예상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단지 A씨가 노동능력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회생을 도모할 수 있는 상태, 즉 추가적인 채무변제가 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해 원심 결정을 파기했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마1904,1905 결정).
위 사례의 원심법원이 취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이 가능한 연령대에 있으면서 ▲직업적 경력이 존재하고 ▲실제로 노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채무자의 파산신청은 기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 단지 나이가 어리다거나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산신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산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법원이 무조건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도산절차를 택해 채무를 면책받는데 있어서는 채무자 스스로 도산절차 신청 요건에 적합함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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