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회생개시신청을 하면 상장회사든 비상장회사든 회사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치도 한순간에 추락한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원칙적으로 주주들은 회사에 '투자'를 한 것이므로,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 손실을 그대로 감수해야 할 뿐 떨어진 주식 가치 등을 이유로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물론 이는 회사가 정상적으로 경영되었을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회사 임원의 배임 등이 개입되어있다면 상법상 규정을 통해 회사의 가치를 떨어트린 임원에게 책임을 추궁하도록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는 회사가 정상적인 경영판단을 했음에도 회생에 이르게 된 경우를 전제하겠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회생개시신청 이후 발생한 손해를 사후적으로 회사에 추궁할 수 없다면, 투자할 당시 회사와 개별적, 사전적으로 손해배상규정을 둬 투자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투자자 A가 B회사에 투자하면서 '회사가 회생·파산을 신청하는 경우, 그로 인한 주주의 손해를 보상하고 납입한 돈 전액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기재해 체결한 계약의 효력이 인정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아니라고 본다. "주주들은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특정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8다236241판결 등)라는 것.
특히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원칙적으로는 그와 같은 약정을 무효라고 하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문구를 둬 예외를 설정 해두었다는 데 있다. 이 예외가 적용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C회사가 어려운 자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신용보증기관인 D에게 거액의 투자를 받아 당사자 간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계약서에는 C회사가 회사의 존속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D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약정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명문으로 규정했다. 이후 C회사는 D의 동의 없이 회생절차개시신청을 진행했고, D는 사전 동의 없이 회생절차를 개시했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채권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회생채권으로 신고했다.
위 사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D 역시 주주들 중 한 명에 불과하므로 다른 주주들과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하는데, 위와 같은 계약의 내용은 D에게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약정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D는 공적 지위가 인정되는 신용보증기관으로 C회사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금을 투자했고,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D에게 감시 기회를 제공하고 도덕적 해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다른 주주들에게 오히려 이익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보았다. 또한 "무엇보다 회생절차 개시신청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의 결의 사항으로, 주주총회 결의사항이 아니어서 다른 주주의 의결권이 직접 침해되는 것도 아니며, 실질적으로 '약정된 의무의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지급'이지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D의 손을 들어주었다(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3다210670판결).
일반적으로 회사가 거액의 자금을 유치하고 신주를 인수할 때 대표이사와 주주, 회사 간 3자 약정서 내지 합의서가 작성되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사전 동의권을 규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그러한 약정의 경위와 목적,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 주주의 의결권 침해 여부 등을 종합해 고려한 뒤 예외적으로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약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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