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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양팽의 일본 이야기] 일본에는 깻잎 논쟁이 없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지금은 잠잠해진 이야기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깻잎 논쟁에 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원조는 '한 연예인 부부와 그 부부가 다 아는 친구인 여자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여러 겹의 깻잎에서 한 장을 떼지 못하고 낑낑대는 걸 도와주려고 남편이 깻잎을 잡아주었다. 이게 아내가 화낼 일이냐 아니냐를 방송에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엉뚱하게도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한 일본에서의 경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일본에 건너갔을 때는 히라가나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해졌고 일본인들과의 교류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일본인과 생선구이 집에서 단둘이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잘 구워진 임연수와 고등어가 식탁에 올랐고 군침을 흘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생선구이를 좋아해서 생선 가시를 바르는 것이 능숙했지만 그 중년의 신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한참을 생선 가시와 씨름하고 있기에 반사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잡아주었더니 정색을 하면서 젓가락을 치우라고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늘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정색하고 말을 하니 내가 무엇인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많은 경우의 수가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내 침이 묻은 젓가락으로 자기 음식을 집어서 그런 것이라는 합리적인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일본에서는 한 접시에 두 개의 젓가락이 같이 들어가는 것이 식사 예절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식사 예절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고 일본에는 그들만의 특이한 식사 예절이 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분들은 다들 한 번씩 불편하다고 느낀 것처럼 거의 모든 음식을 숟가락을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만 먹는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음식점에서도 그 젓가락을 가로로 차려놓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젓가락을 세로로 두면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가로로 놓는 것이라고 한다. 한 접시에 두 개의 젓가락이 들어가는 것을 식사 예절에 어긋난다고 하는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어 자기의 영토에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식사 예절은 아주 오래전 사무라이 정신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 문화 중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의 경기 규칙이다. 스모 규칙은 매우 단순하여 경기장 밖으로 발이 나가거나 발 이외의 신체 부위가 바닥에 닿는 쪽이 패배하는 것이다. 조금 다르게 보면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침략한 외부의 침입자를 쓰러트리거나 몰아내는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규칙으로 보인다. 일본 문화가 우리와 매우 닮아있다고 말을 하지만 식사 예절에서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서도 역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깻잎 논쟁으로 돌아와, 내 선택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본에서는 깻잎 논쟁과 같은 이유로 연인이나 부부가 다툴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깻잎을 때주기 위해 젓가락을 들이미는 것은 호의가 아니라 전쟁 선포나 다름없으므로 오히려 둘의 싸움을 말려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일본인들은 깻잎을 먹지 않으니 애초에 깻잎 논쟁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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