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파격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23일 오전 10시, 피의자 신분으로 금감원에 출석했다.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에 관여한 혐의다. 일부 경영진이 구속된 가운데 창업자까지 소환된 것이다. 카카오는 당시 하이브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2400억원을 들여 SM 주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렸단 의혹을 받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김 전 의장이 소환되면서 금감원 창립이래 처음으로 포토라인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불공정 관련 참고인이나 피의자들이 공개 소환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기자들 이목을 피하기 위해 평일 늦은 밤이나 휴일 날 몰래 소환하던 방식과는 완전 딴판이다.
포토라인은 공인인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소환될때 언론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포토존이다. 언론의 취재 과열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수사 대상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포토라인에 서면 여론 재판에선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다름없게 된다. 이 때문에 정작 포토라인을 만들었던 검찰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포토라인을 폐지했다.
검찰이 없애버렸던 포토라인이 금감원에서 파격적으로 부활하면서 그 부작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전 의장이 포토라인에 등장한 이후 언론에는 매일 카카오와 김 전 의장 혐의가 보도되고 있다. '국민 벤처 카카오가 어쩌다', '카뱅 대주주 자격도 풍전등화', '카카오 벌금형 이상 받으면 카카오뱅크 잃을수도', '김범수 구속영장 청구 위기, 커지는 카뱅 경영권 리스크' 등 '시세조종 범죄자'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금감원의 피의사실 공표 경향은 이번 만이 아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8월 24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 3개 운용사에 대한 추가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라임자산운용이 대규모 환매를 중단하기 직전인 2019년 8~9월 4개의 펀드에서 투자 자산의 부실과 유동성 부족으로 환매 대응 자금이 부족해지자 다른 펀드 자금과 운용사의 고유 자금으로 다선 국회의원 등 일부 투자자에게 특혜성 환매를 해줬다고 적시했다. 금감원 발표 이후 특혜성 환매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유력 정치인은 현 4선인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지목됐다.
법조계와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감원의 포토라인 신설이나 보도자료에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등을 집어넣은 것은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약칭 외감법)' 제 20조 비밀엄수 위반은 물론 더 확대하면 형법 126조에 명시된 불법적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시장 질서 혼란 엄단' 등을 앞세워 피의 사실을 흘리며 여론전을 펴는 금감원의 행위는 명백한 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외감법 제 20조는 ▲감사인 ▲감사인에 소속된 공인회계사 ▲증권선물위원회 위원 ▲감사 또는 감리 업무와 관련해 보조하거나 지원, 위탁받은 금감원이나 한국공인회계사회 관련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두 사안에 대해 정치적 고려가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파격 행보와 격식 파괴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 수 있다. 원장이 바뀌고 혐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반론이 언제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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