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코레일유통 본사 대표실에는 눈길을 끄는 글귀가 있었다.
'코레일유통 돌파 6000억.'
칠판에 붓글씨로 거침없이 쓴 표어를 기자는 한참 쳐다봤다. 언론에선 종종 공기업의 이윤추구를 두고 비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담조로 붙인 표어인가 했더니 이날 만난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는 진지했다. 김 대표가 말하는 6000억원은 '대국민 서비스의 증명'이었다.
"매출이라는 건 그저 숫자일 수도 있지만, 우리 공기업의 매출이란 건 기업이 고객이자 국민에게 제공한 서비스의 시장가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6000억원 매출을 했다면 그만큼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매출이 중요해요. 매출이 떨어진다면 반대로 서비스를 깊고 넓게 제공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메트로경제가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를 만났다. 지난 4월 코레일유통 대표로 취임한 그는 대기업과 벤처기업, 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키운 경영혁신과 변화관리 전문가로 꼽힌다.
이곳저곳 겪어본 김 대표지만 고객이자 국민, 국민이자 고객을 맞게 된 후 공기업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코레일유통의 상품은 '이동의 경험'이다. 수도 서울부터 쇠락한 오지까지 전국을 잇는 기간산업인 철도를 둘러싸고 오가는 것이 코레일유통의 상품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은 코레일유통의 적이기도 하다. 현재 전국 철도 이용객의 60%는 KTX를 이용하고, KTX의 정시율은 99.8%에 이른다. 고객은 편리해졌지만, 철도역에 머무는 시간은 짧아진 것이 코레일유통에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셈이다.
"KTX 정시율이 높다는 건 고객이 이동하는 시간 외에는 철도역사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도 돼요. 실제로 출발 시간에 근접하게 와서 몇 분 머물지 않고 떠나는 고객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들의 5분, 10분을 우리가 가져와야 해요. 그만큼 제대로 된 공간을 갖춰야만 합니다. 고객이 투자한 5분을 또다른 이동과 서비스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느냐가 우리 비즈니스의 숙제 아닐까요"
철도역사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인해 그동안 회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코로나 팬데믹이고, 또다른 하나는 고속열차(KTX)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모빌리티 혁명도 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김 대표가 생각한 코레일유통의 무기는 바로 '연결'과 '확장'이다.
김 대표는 취임 후 업에 대한 정의를 바꿨다. 유통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이 그것이다.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이 된 코레일유통은 지난 5월 카셰어링 서비스 '쏘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철도역을 다른 교통수단까지 연계하는 종합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다. 토스 등 ICT 기술 기업들과의 업무협약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했다.
"수많은 나라가 도시 소멸을 이야기하면서도 철도 역을 폐쇄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서로 연결됐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무겁고 중요하죠. 하나하나의 메시지들에 무게가 있어요. 대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와 감정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어요."
공간 제약을 넘어서고 새로운 문화로 확장하기 위해 김 대표는 회사 문화에 신경쓰고 있다. 김 대표는 취임사에 자신을 최고청취책임자(CLO:Chief Listening Officer)라고 칭했다. 그간 숱한 경험에서 체득했다. 매주 전국 현장을 돌며 직원들과 커피챗을 하고, 매월 '월간CLO'를 제목으로 편지를 쓴다.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공개한 뒤 수시로 문자메시지, SNS로 직접 소통한다. 번호를 공개한 후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문자부터 남에게 터놓기 어려운 고민까지 직원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코레일유통은 대한민국 철도 플랫폼의 공간 운영자입니다. 회사는 공익성과 수익성의 균형감각, 미래 지향성, 국민과의 신뢰 속에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 세가지는 다른 기업, 특히 민간에선 찾기 어려운 강점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 어쩌면 과거의 플랫폼에 스스로를 묶어 놓은 듯 합니다. 강점 속에 감춰진 약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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