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한국 최초의 영화 기본법인 '영화법'이 제정됐다. 1999년 예술의 자유 보장 및 건전한 공연활동 진흥을 위한 '공연법'이 만들어졌다. 2016년엔 문학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근거를 마련한 '문학진흥법'이 공표됐다. 이 밖에도 출판, 음반 등의 개별법이 속속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미술 분야 전체를 통일적으로 규정하는 법령은 없었다. 예술의 주요 장르 중 하나지만 '문화예술진흥법'상 세부 장르로만 다뤄졌다. 이에 (사)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등 미술계 21개 단체는 문화예술진흥법으론 미술진흥을 위한 실효적 체계구축에 한계가 있고, 미술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를 포괄하지 못한다며 '미술진흥법'의 조속한 마련을 촉구해왔다.
미술진흥법이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1년 법안 발의 이후 2년여 만이다. 핵심 내용은 체계적인 미술진흥정책 추진과 미술 서비스업 신고 제도를 포함한 미술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 작가의 권리 보장을 위한 '추급권(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 등이다.
이중 추급권이 가장 큰 이슈다. 추급권은 미술품이 거래될 때마다 작가나 상속권자가 작품 판매 금액의 일부를 작가 본인이나 유족이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양도 불능의 상속 가능의 권리이다. 연주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는 음악 작품과는 달리 미술품은 일단 한 번 양도하고 나면 원저작자에겐 더 이상 추가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
이에 다른 예술작품과 수입 형평성을 맞추면서 원활한 창작활동까지 보장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가 추급권이다. 1920년 프랑스가 처음 도입한 이후 영국,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 일부 주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추급권 도입을 둘러싼 미술계 구성원 간 시각차가 뚜렷하다. 작가를 포함한 창작자들은 미술 시장의 투명성 확보 및 건강한 미술생태계 확립 차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 화랑이나 옥션 등 미술 유통업계는 한국 미술 시장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두 입장 다 수긍과 반론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지엽적인 측면을 벗어나 미술진흥이라는 소실점 아래 미술관계자들의 다층적, 다발적 논의가 과제로 남았다. 여기엔 국립현대미술관이 맡고 있는 기존 정부미술품 대여 기관 외, 지자체 및 공공기관으로 관리대상을 확대한 '공공미술은행'이나 '미술진흥원' 설치와 같은 미술진흥 전담 기관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문제는 미술진흥법의 정체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 방향과 철학이 두루뭉술하다. 경매업, 화랑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 33개의 조항 중엔 문화예술에 대한 존중보단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것이 수두룩하다. 이는 미술진흥법이 '미술유통법' 내지는 '미술업자법'처럼 비춰지는 이유다.
실제로 미술진흥법은 미술품에 대한 가치 평가 또는 취득과 처분에 관한 의견을 제공하는 전문가의 업무를 '미술품 자문업'으로 규정하거나 전시기획과 개최, 운영주체를 '서비스업자'로 묶고 있다. 초기 거론되던 평론가를 비롯한 이론가,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망은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미술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고용형태가 불분명한데다 초현실적인 평론비와 원고료를 받고 있다. 심지어 10년 혹은 20년 전 평론을 재사용해도 그에 대한 저작료 등의 보상은 전혀 없다.
이외에도 '시각적 매체를 이용하는 표현'으로 한정하고 있는 '미술'에 대한 정의는 전근대적이고, '미술창작자'에 대한 정의는 아예 빠졌다. '예비 전문 인력 양성 지원'에 대한 부분 역시 누락됐다. 어떤 면에선 '미술업계 제도화'라는 명분 아래 제정된 '규제법'이라는 인상까지 심어준다.
미술진흥법은 손볼 데가 많다. 시행령에 앞서 보다 섬세한 논의와 조율이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시행령이 미술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미술인들 먼저 의견을 모으고 합의된 개선안을 정부에 제시해야지 않나 싶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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