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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유통일반

'김치는 왜 그렇게나 비싸졌을까' 물가 인상 보다 빠른 '이상기후 인상'

1월 하순 닥친 한파와 2월 부족했던 일조량으로 배추를 비롯해 많은 봄 출하 농작물 값이 크게 뛰었다.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는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줘 급격한 가격변동을 일으킨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한 상인이 배추를 다듬는 모습. /뉴시스

 

 

김치는 왜 비싸졌을까. 복잡한 유통망과 탐욕어린 판매자 탓일까. 정답은 '기후위기'에 있다.

 

지난 1월 닥친 한파와 2월 부족했던 일조량에 김치의 주재료가 되는 채소 가격이 모두 폭등했다. 10일 기준 배추 중품 10㎏의 도매가는 전국 평균 9058원으로, 평년 7612원보다 약 18.99% 높다. 올해는 주요 산지에 1월 하순 경 한파가 닥치며 저장배추가 줄었고 지난해 하우스 배추는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등의 영향으로 정식이 늦어졌다. 양파도, 무도, 마늘도 사정은 모두 비슷하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상승률 만큼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불량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반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과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을 비교했을 때 최근 30년간 평균 기온은 1도 올랐고, 폭염일수는 2.5일 늘고 한파일수는 2.0일 줄었다. /김서현 기자, 그래픽 정민주 기자

 

 

11일 <메트로 경제> 취재 결과, 매년 심각해지는 이상기후 현상이 유통산업에 큰 영향을 주며 사회 전반 삶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기상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961~1990년까지 30년과 이후 30년(1991~2020년)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봄과 여름의 시작일은 각각 17일, 11일 빨라졌고 가을과 겨울은 각각 9일, 5일 느려졌다. 이는 식물이 성장할 수 있는 기간에도 영향을 끼쳐 10.1일 더 길어졌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들이 입는 옷과 가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전자랜드에 따르면 냉·난방가전의 판매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전자랜드에서는 소형 냉방가전 판매량이 급등해 창문형 에어컨은 전년 동기 대비 79%, 선풍기·서큘레이터는 69% 가격이 상승했다. 지난 3월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다. 유사한 현상은 지난해 9월에도 나타났다. 지난해 9월 한 달 간 전열기기와 온풍기는 각각 전년 동기대비 7.5배, 6배 뛰었다.

 

전자랜드 측은 "계절을 막론하고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과거보다 날씨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의 아웃도어 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김정아씨는 최근 의복 판매에서 기후 변화를 느낀다고 밝혔다. 김씨는 "우리 매장은 주로 트래킹과 캠핑 의류를 판매하는데, 특히 많이 찾는 상품이 이른바 '바람막이'로 불리는 기능성 재킷들"이라며 "긴팔인 만큼 여름에는 팔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더울수록 더 찾는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나 심한 일교차가 계절에 상관없이 나타나다 보니 패션 보다는 보온을 위해 구입한다"고 설명했다.

 

기후 변화에 밥상 위 반찬도 바뀔 전망이다. 충북 음성군은 11일 기후대응농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1850억원을 들여 기후변화에 맞춘 주력 작물개발과 기술보급에 나선다는 게 골자다. 현재 후보군은 백향과(패션프루트), 만감류, 구아바, 용과, 오크라, 펜넬 등이다. 펜넬을 제외한 백향과, 구아바, 용과, 오크라 등은 모두 열대/아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작물이다.

 

이상승 음성군 기후대응농업팀장은 "오크라 같은 작물은 과거에는 고온을 요구하기 때문에 재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여름에 재배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봄에는 꽃이 피고 장마기에는 비가 오며 농작물이 잘 자라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와 맞지 않은 고온과 한파, 서리, 가뭄 등이 갑작스레 닥친다. 기후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우리 팀이 꾸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이 1970년부터 축적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과일 재배지는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90년 경에는 사과는 강원도 내 산지 일부에서만, 감귤은 남한 전체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할 전망이다.

 

가축에도 기후변화는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는 전국토가 대체로 여름에도 닭을 기르기에 큰 문제가 없지만, 2090년에 서울과 강원도 일부 지방을 제외한 모든 국토에서 매년 여름 닭이 폐사에 이를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우·젖소도 마찬가지다. 소는 2050년 경부터 남해안 일대와 경상도 전역에서 사육이 어려워지고, 2090년에 이르면 매년 8월이면 전국적으로 폐사 위기를 겪을 예정이다.

 

밥상머리 상품을 책임지는 유통기업의 풍경도 변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상기후가 매년 잦아지면서 재고 확보와 합리적인 가격 책정에 어려움을 겪는 데 따른 결정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이른바 CA(Controlled Atmosphere) 저장방식을 도입해 작황이 좋은 때 작물을 비축해 가격과 물량 변화가 심한 때에 풀고 있다. CA는 작물을 저장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첨단 기술로 최대 10여 개월 추가 저장이 가능하다. 홈플러스는 계약재배 농장인 '신선농장'을 운영 중이다. 계약 재배는 재배 전 미리 농가와 특정 시세를 기준으로 계약하는 형태로,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이상에도 계약한 시세대로 매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날씨의 변화가 너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대처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고객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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