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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포츠종합

[새벽을 여는 사람들] 라성택 황학정 사두, "흐트러진 심신을 허용하지 않는 국궁, 자신과 교감해보세요"

대한민국의 전통 문화이자 스포츠 국궁
아픈 역사 뒤로 하고 국궁 1번지로 거듭나
심신 단련의 최적 스포츠
저변 확대 위해 노력하는 모습

라성택 사단법인 황학정 대표이사(사두)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에서 국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강성진PD

사직단을 끼고 왼편으로 난 인왕산로 오르막길에서 금세 다다를 수 있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산1번지엔 대한민국 '국궁 1번지' 황학정(黃鶴亭)이 자리 잡고 있다.

 

오전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13일, 황학정엔 사우 5명이 145미터 떨어진 표적을 향해 차례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낙엽 밟는 소리도 허용하지 않는 적막 속에,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황학정 사무실에서 만난 라성택 사단법인 황학정 대표이사(사두)는 "국궁은 민족의 혼이 담긴 진정한 무기로, 상당한 역사성을 가진 문화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우리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훌륭한 스포츠"라고 국궁을 평했다.

 

황학정의 시작은 1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오개혁(1894년) 이후 군대의 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국궁터)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고종황제는 1898년 어명을 내려 백성들의 심신단련과 국궁의 명맥을 잇기 위해, 경희궁 안에 황학정을 짓고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

 

국궁은 신궁(神弓)으로 불린 태조 이성계, 왕과 신하들의 활쏘기 의식인 대사례(大射禮)를 부활시킨 영조, 50발 중 50발을 맞출 실력을 갖췄음에도 '한 발은 쏘지 않는 게 군자의 도리'라며 마지막 한 발을 빗 맞힌 정조까지 왕이 사랑하는 스포츠이자 문화이기도 했다.

 

왕뿐만 아니라 문인과 무인, 유생, 일반 백성, 기생까지 활쏘기를 즐겼고 실력도 좋았을 만큼 조선은 '활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국에 활쏘기 금지령을 내리면서 시민들의 무예 연습과 고유의 문화를 끊어 내려는 시도를 벌였다. 서울 시내에 5개에 이르던 사정은 자취를 감췄고 명맥을 이어온 황학정 사우들이 등과정 터를 불하받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전국에 400여 곳의 사정이 성업 중이다.

 

황학정에서 내려다 본 국궁장 전경. 국궁잔 앞 공터에 정심정기(활을 쏠 때,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하라)는 말이 쓰여 있다. / 강성진PD

◆정심정기(正心正己)

 

사우들은 황학정 앞에서 활을 쏜다. 사우들은 황학정 앞에 새겨진 정심정기(正心正氣)란 글귀를 보고 자세를 고쳐잡는다.

 

라성택 대표는 글귀를 가리키며 "정심정기, 활을 쏠 때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하라는 말이다. 머릿속에 잡생각이 있거나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표적을 절대 맞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조준경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궁체(활을 쏘는 자세)에서 조준점을 만들고 각도를 조절한 다음에 시위를 놔야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에 꽂힌다.

 

라 대표이사는 "궁체를 취하면서 145미터 떨어진 과녁에 맞히기 위한 자신만의 조준점을 만들고 발시하는 과정에서 잡생각을 먹지 않고 만장(시위를 최대한 당김)을 이루고 잠시 숨을 멈추고 나 자신도 모르게 쏴야 올곧게 날아가서 표적을 맞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라 대표이사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같은 자세로 오래 일해 몸이 굳은 사람들에게 국궁은 최적의 스포츠라고 소개했다.

 

그는 "저도 회사 다닐 때 유럽 출장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팔이 올라가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다. 오십견이 온 것이다. 그러던 찰나에 지인 한 분이 활을 한번 내보시라고 조언해줬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건강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궁을 배우면 허리가 곧게 펴지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간다. 단장 호흡이 되니 심폐 기능도 좋아진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활이 나가질 않으니 잡생각도 하면 절대 안 된다. 사무직으로 컴퓨터 많이 보시는 분들, 공무원 행정직 분들은 꼭 국궁을 접해보라고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황학정을 설명하는 안내 표지판. / 강성진PD

◆"저변 넓혀가기 위한 노력 계속할 것"

 

우리 민족은 과거부터 활을 잘 다뤄 '활의 민족'으로 불렸다.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도 전 세계에서 활 쏘는 실력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획득한 양궁 금메달만 무려 27개다.

 

라 대표이사는 이제 양궁처럼 국궁도 스포츠와 문화 저변을 넓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궁은 70미터 떨어진 과녁을 향해 쏘지만, 국궁은 그것에 배가 되는 145미터 떨어진 과녁을 향해 쏜다. 그렇기 때문에 국궁은 표적 적중 개수를 두고 승패를 가린다"며 "같은 과녁이라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가면 맞추는데, 양궁처럼 거리를 줄이고 중앙에 가깝게 맞추는 쪽에 점수를 주는 방식도 도입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처럼 정립돼야 할 필요가 있다. 프로 게임이라든지, 기업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체계적으로 보급해야 할 것"이라며 "수상 실적으로 장학금을 수여한다든지, 대학 입학 시 가산점을 준다든지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에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대회를 개최하려고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라 대표이사는 활은 민족의 고유한 문화이고 자신과 싸우는 '멘탈 스포츠'이기 때문에 예(禮)가 굉장히 발달했다며, 이를 후세대와 공유하는 문화 체험 기획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성택 사단법인 황학정 대표이사(사두)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에서 연세대 국궁 동아리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강성진 PD

◆국궁을 접하려면?

 

라성택 대표는 국궁을 접하고 싶다면 전국에 있는 사정에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활은 위험한 무기이기 때문에, 야외에서 활을 쏘려면 기본 교육이 7~12개월 정도 소요된 후 야외 사대에서 쏠 수 있다.

 

비용도 다른 스포츠에 비해 비싸지 않은 편이라 요새 찾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황학정은 매주 금요일 활쏘기 체험 교실을 운영하고 수강생들에겐 기초, 심화반 과정을 교육한다. 코로나19 이전엔 140~150명이 국궁을 배우기 위해 황학정을 찾았다고 밝혔다.

 

마침 사무실 옆에선 연세대 국궁동아리 회원 20여 명이 국궁을 배우고 있었다.

 

장은아 연세대 국궁 동아리 회장은 "고등학교 때 국궁을 처음 접했다. 대학 입시 동안 잠시 활을 놨다가 입학하고 나서 동아리에 들어왔다"며 "국궁의 가장 큰 매력은 145미터의 먼 거리까지 내 힘으로 화살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일상이 힘들고 좀 지치더라도 내가 쏜 화살이 날아가서 과녁에 맞을 경우, 그 화살의 날아가는 궤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머릿속이 비워진다"고도 했다.

 

시계바늘처럼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교감'이 화두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과 동물들이 교감을 나눠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활과 교감을 나누고 자신과 더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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