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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벽을 여는 사람들] 22년 구유 장인, 박상연 서강대 제작 총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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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서강대 구유 제작 총괄 차장이 2022년 성탄 구유 안에서 조형물을 소개하고 있다. /손진영 기자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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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정문 앞 성탄 구유 모습 /서강대

 

강보에 경배를 올리고 있는 허름한 초가집 앞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찾아온 것은 서강대학교 정문에 조성된 '성탄 구유'다. 서강대는 2000년부터 해마다 성탄절을 기념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베틀레헴 마구간을 재현한 성탄 구유를 제작해 왔다. 자그마치 22년간 꾸준히 성탄 구유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유의 아버지'인 박상연 서강대 구유 제작 총괄 차장이 있었다. 박 차장은 서강대 교직원들 사이에서 '서강의 보물'로 불리는 만능맨이다. 서강대 영선실에서 학교 시설물의 관리와 보수, 이제는 코로나19 방역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는 "서강의 성탄 구유가 이제는 신촌의 명물로 소문 나 성지순례길에 오신 분들이 사진을 찍고 가신다"며 "종종 가까이서 보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 경보음이 울리기도 한다"고 웃었다. 서강대 학내에는 과거 서양 프랑스 젊은 신부들의 무덤이 있는 노고산 성지가 있다. 이 성지순례길의 코스로 구유 관람이 포함되곤 했다. 이날 구유를 보며 박 차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와중에도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손님이 있었다. 관광객이 많아 예수상이 사라지는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이중으로 보호 중인 보안 장치 역시 그 이후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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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서강대 구유 제작 총괄 차장이 서강대 작업실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다.  /손진영 기자 son@

 

◆22년간 성탄 구유 제작...장인의 노하우 생겨

 

박 차장은 1999년 서강대에 목수로 입사했다. 성탄 구유 제작은 입사와 동시에 받았던 제안이다. 그는 "한 20년 동안 혼자서 구유를 제작하다 보니까 노하우도 많이 생겼다"며 "처음에는 명동 성당을 보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명동 성당보다도 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박 차장에 따르면 전국에 이 정도 규모의 성탄 구유를 제작하는 곳은 서강대가 유일하다.

 

정문 정가운데를 차지하는 큰 규모임에도 불과 2년 전까지 박 차장은 혼자 구유를 제작해냈다. 그러다보니 작업 시간은 평균 20일을 웃돌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1~2명의 인원이 더 보충됐다. 덕분인지 올해는 단 일주일만에 구유 제작을 끝낼 수 있었다.

 

보통 12월 초에 제작 단계에서 들어서지만 올해는 시기를 조금 앞당겨 11월 28일에 시작했다. 빠르게 제작된 2022년 성탄 구유는 서강대 논술고사를 치르러 온 수험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박 차장은 "20년 넘게 제작하다 보니까 다양한 요령이 생겼다"며 "학생들이 시험을 보러 와서 마음의 평온함을 좀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신부들과 함께 해마다 구유의 발전에 주력했다고 한다. 중간에 잠깐 찾아왔던 잠복기도 견디고 다시 부활했지만, 코로나19와 함께 학내가 휑해져 아쉽다는 그다. 박 차장은 "구경하는 학생들한테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놀라기도 하고, 함성 지르면서 좋아들 한다"며 "매년 똑같으면 식상하니까 구조물 등 디테일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학교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구유 테마에 대한 교내 공모를 시작했다. 2022년 서강대 성탄 구유는 '연결(Connect): 마음과 마음이 닿으면 생명이 피어난다'는 주제로 제작됐다. 서로 다른 나와 너를 경계 지으며 분열과 갈등,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을, 사랑과 위로의 상징이었던 예수의 탄생을 통해 서로가 다시 사랑으로 화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서강대 성탄 구유 제작 과정 /박상연 서강대 구유 제작 총괄 차장

◆제작부터 재료 수급까지 직접 나서

 

예전에는 지역별로 나무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평에 가면 피죽(나무의 겉껍질 부분)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여의치가 않았다. 박 차장은 "요즘에는 피죽을 퇴비 처리해 버려서 톱밥으로 만드니까 나무 구함에 어려움이 가장 많다"며 "운임료나 배송비도 비싸기 때문에 직접 가지러 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초가집을 만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초가집을 짓기 위해서는 짚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구하려면 상당히 고가가 되기 때문이다. 나무뿐만 아니라 짚 역시 직접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짚 엮는 것을 흔히 '엉을 넣는다'고 한다. 그걸 엮어서 지붕을 돌리고, 위에 비를 막기 위해 용마루 등 최종적으로 씌우는 것들이 있는데 다 직접 제작한다."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니지만 구하기가 어려워 지면서 운임비, 인건비 등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지금까지 쌓아 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간단한 구조물을 통해 구유의 초가집을 완성하고 있다. 이어 "요즘 어디 가서 초가집을 구경하겠나"라며 "서울에서 초가집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우선적으로 바닥재를 설치하고, 구조물 기둥을 세운 뒤 대들보가 올라갈 때는 상량식도 지낸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으로, 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집이 쉽게 무너진다는 미신이 있다. 제작 과정 하나하나에 소홀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박상연 서강대 구유 제작 총괄 차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진영 기자 son@

◆교직원 사이에서는 "서강의 보물"로 통해

 

"서강대 건물 껍데기 빼고는 제가 다 처리한다."

 

인터뷰 도중 마주치는 교직원들이 설명하는 박 차장은 '서강의 보물'이었다. 하루에도 그를 찾는 전화가 적게는 50통에서 많게는 100통까지 걸려 온다. 박 차장은 오죽하면 점심 시간에는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강대 내에는 1만5000명의 구성원이 활동하고 있다. 교내 시설물 관리를 맡고 있는 박 차장은 책상, 창문, 출입문 등 무언가 고장 났을 때마다 달려간다. 전기와 설비를 뺀 나머지는 다 자신의 업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덕분에 서강대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작업실로 가는 도중에도 학교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서강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서강대에 근무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큰 보람"이라며 "학생들이 있으니까 교직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늘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다.

 

박 차장은 서강대 교직원 동아리에서 재능 기부도 하고 있다. 레슨비를 따로 받지 않고 월·수·금은 테니스 레슨을, 화·목은 배드민턴을 가르친다. 운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그는 정년퇴임 후에 집 앞인 강원도 인제 내린천 인근에 펜션 겸 테니스장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강을 챙기고자 주말에도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다.

 

박 차장은 "서울 시내에 소원 빌만한 곳이 없지 않은가"라면서 "촛불 하나 켜 놓고 소원 하나 비시면 이뤄지실 것"이라고 웃었다. 매년 딱 한 번만 빈다는 그의 올해 소원은 '건강'이다.

 

구유는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가 끝나는 내년 1월 8일까지만 서강대 정문에서 볼 수 있다. 박 차장은 서강대 성탄 구유를 눈에 담고자 한다면 저녁에 찾길 당부했다. 초가집 내외부로 장식된 은은한 조명 장식이 빛을 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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