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연구진이 모낭까지 완벽히 살아있는 피부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처음 인간 피부 오가노이드를 개발하긴 했지만 각질, 표피, 진피층은 물론 성숙한 모낭과 모발 형성까지 가능한 피부 유사체가 개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학교 강경선 교수 연구팀과 강스템바이오텍의 공동 연구 결과였다. 오가노이드는 장기유사체 혹은 '미니 장기'라고 불리며 실제 장기기관의 기능 및 구조와 유사한 3차원 세포 집합체로 정의된다. 신약개발, 인공장기 개발 및 질병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며 차세대 첨단 바이오 의약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오가노이드 시장은 2027년 약 4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강스템바이오텍의 창업자이기도 한 강경선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오가노이드 권위자다. 그는 지난 2018년 오가노이드학회를 처음 만들고 매년 연례 학술대회를 열어 전 세계 오가노이드 분야 권위자들을 국내로 초청하고 있다.
강 교수는 <메트로경제신문> 주최로 지난 달 26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2 제약&바이오포럼'에서 오프닝 스피치를 했다. 많은 직함 가운데 오가노이드학회장 자격으로 포럼에 참석한 그를 따로 만났다. 메트로경제신문>
-이번에 만든 피부 오가노이드는 뭐가 특별한가.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만든 피부 오가노이드는 의도치 않은 과도한 연골 형성이 발생하면서 피부 조직이 작아지는 한계점이 있었다. 우리는 윈트(Wnt) 신호 기전에 주목했다. 피부 오가노이드 제작 과정에서 Wnt 신호 기전 활성화를 유도하면 연골 과형성이 억제되고 모낭을 포함한 모든 피부 조직이 완벽하게 구현된, 순수 피부 조직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 또 이 오가노이드를 공기-액체 계면(ALI) 방법으로 배양해 각질, 표피, 진피층과 피하지방층이 뚜렷이 구별되는 구조를 가지면서 모낭이 살아있고 모발이 형성돼 실제 피부와 거의 유사하다. 기존 피부 오가노이드 배양법보다 장시간 안정된 형태로 배양이 가능한 장점도 있다."
-피부 오가노이드는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나.
"화장품을 개발할 때 동물실험이 완전히 금지됐기 때문에 피부 오가노이드 활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개발된 오가노이드는 모낭조직이 완벽하게 살아있어 탈모 치료제를 개발하는 약물 스크리닝 플랫폼에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는 또 피부 오가노이드에 아토피를 유발하는 황색포도구균을 처리해 인체 아토피 피부염과 유사한 모델링을 제작했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오가노이드 연구와 계획은.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려고 한다. 치매 치료제 개발에 가장 어려운 점이 인간 치매와 똑같은 동물 모델을 만들 수 없다는 거다. 쥐를 활용하는 것은 너무 큰 한계가 있었다. 반면,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치매 환자와 똑같은 뇌를 8주 만에 만들 수 있다. 치매가 뇌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자유롭게 잘라보며 연구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
강 이사장이 지난 2010년 10월 설립한 강스템바이오텍은 세계 최초 아토피 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 에이디주'를 개발했다. 이 치료제는 아토피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1회 투여로 3년 이상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퓨어스템 에이디주의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며, 내년 품목허가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스템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골관절염 치료제 '퓨어스템-오에이' 키트주는 최근 임상 승인을 받고 인체 투여를 시작하고 있다. 이 치료제 역시 1회 투약 만으로 연골조직이 재생되는 세계 최초 골관절염 근본적 치료제(DMOAD)를 목표로 하고 있다.
-퓨어스템 AD는 임상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나.
"2019년 10월에 임상3상 유효성이 미흡하다는 결과가 나온 이후 실패 원인 분석을 통해 꼼꼼히 임상 재설계를 했다. 제형과 공정을 모두 바꿔 1년 만에 임상을 다시 시작한 것은 국내 바이오테크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과거의 실패가 오히려 큰 공부가 됐고, 1보 후퇴 3보 전진의 효과를 냈다. 현재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으며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의 만족도도 훨씬 높다. 분명히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퓨어스템-오에이 키트주의 성과는.
"골관절염이 유발된 염소에 퓨어스템-오에이 키트주를 1회 투여한 뒤 6개월, 12개월 시점에서 관절면을 보니 염증 개선은 물론이고 정상연골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연골조직과 반월판 부위가 재생되는 것을 확인했다. 염소는 무게가 45~50㎏이고 무릎을 많이 사용해 사람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제까지 골관절염 치료는 일시적으로 통증을 제어하는 치료제나 무릎절개술, 인공관절 삽입과 같이 신체 부담과 부작용이 있는 치료법에만 의존했다. 1회 투여로 관절을 재생할 수 있다면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 환자들의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강 이사장은 올해 첨단재생의료산업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이후 정부의 예산 지원과 규제 개선을 통한 생태계 조성은 물론,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이 시행됐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아직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첨생법은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오가노이드 기반 장 질환 재생치료제 임상연구 2건이 최근 첨생법에 의한 적합 판정을 받고 임상을 시작한다. 한국노바티스의 '졸겐스마주'와 '킴리아주' 등 유전자·세포 치료제도 첨생법에 의해 허가를 받았다. 오가노이드 분야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다. 하지만 정부가 오가노이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산학연병이 함께 현재의 문제점과 제도의 필요성을 알린다면 충분히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오 산업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9월 이후 바이오 업계 투자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렇게 투자가 안 되는 것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펀딩이 안되니 인원이 줄어들고, 연구개발도 중단되는 상황이다. 기업공개(IPO) 시장도 침체돼 상장을 하더라도 주가가 투자가보다 낮아 투자회수(엑시트)가 안되는 게 문제다. 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바이오 업계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규제 혁신이 시급하다. 인수합병(M&A) 규제를 풀어 바이오 벤처들이 IPO만을 바라볼게 아니라 M&A를 통해 엑시트를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글로벌 빅파마들처럼 자유롭게 M&A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강 이사장은 국내 연구진과 기업의 저력을 믿고 있다. K-오가노이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국내 오가노이드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오가노이드가 처음 생겨난 지 55년이 지났지만 전세계적으로 관련 학회는 전무했다. 그래서 2018년 한국에서 처음 오가노이드학회가 생겼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오가노이드학회라고 정했던 명칭을 오가노이드학회로 변경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매년 학술대회를 열어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세계 오가노이드 학계를 리드하고 있다. 오가노이드 학회지도 세계 최초로 만들어 도메인을 등록하고 영문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한국이 이미 오가노이드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러한 성과가 오가노이드 기반 재생치료제의 세계 첫 상용화로 이어진다면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인 전 세계 오가노이드 시장을 충분히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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