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내조'를 기조로 공식 석상 등장을 자제해 온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연일 공개 행보에 나서며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는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김 여사는 각종 논란으로 윤 대통령의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비공개 행보를 이어왔으나 지난달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며 행보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김건희 여사는 윤 대통령의 첫 출근을 배웅하거나 지난달 14일 취임 후 첫 주말을 맞아 윤 대통령과 함께 서울 시내 백화점과 시장을 찾는 모습 정도만 공개됐다. 이후 한미정상회담 만찬장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윤 대통령과 영화를 보는 등 종종 언론 노출되기는 했지만, 조심스럽고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김 여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취약계층과 동물권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등 그간 언론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여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동물학대와 유기견 방치, 개 식용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또, 김 여사는 지난 13일 단독으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노 전 대통령 배우자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며 행보를 점차 확장하는 모양새다.
이에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두 분은 대통령의 배우자로서의 삶과 애환, 내조 방법 등에 대해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며 "권 여사의 많은 당부와 조언을 들은 김 여사는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듣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여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도 추진 중으로 알려졌으나 문 전 대통령 측과 대통령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여사는 오는 29일과 30일 양일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동행하며 외교무대에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윤 대통령은 나토 공식 초청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해 나토 동맹국 30개국과 초청으로 참석한 파트너국 간 회의 세션 참석 및 다수의 정상과 양자회담도 가질 예정이다.
다자간 외교무대에서는 통상 '배우자 세션'이 따로 준비돼 있어 참여국의 상황에 따라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동행할 가능성도 크고, 동행할 경우 대한민국 영부인으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김 여사의 활동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김 여사를 전담해 지원할 조직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20대 대선 선거운동 당시 김 여사를 둘러싼 논문 표절, 학력·경력 위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으로 윤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 배우자의 일정 관리 및 활동 수행, 비서 업무, 대·내외 네트워크 관리, 관저 생활 관리 등을 맡는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했고, 취임 후 현재까지도 제2부속실은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이에 김 여사의 행보를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실 직원 두세명 정도를 배치한 상태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전담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일정이 있을 때마다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여사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팬클럽을 통해 유출되거나, 권 여사 예방 때 지인 동행을 비롯해 김 여사 일정에 대한 언론 대응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제2부속실'의 부활을 한 목소리로 내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영부인의 행보라는 것이 때로는 김정숙 여사 때도 그렇고 독립적인 행보를 통해 국격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며 "공적인 영역에서 관리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이제 윤 대통령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며 "대선 때 국민께 약속한대로, 지금도 국민 다수가 원하는대로 조용한 내조에만 집중하게 할 것인지, 국민들께 공약 파기를 공식 사과 후 제2부속실을 이제라도 만들어서 제대로 된 보좌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든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김 여사의 앞으로의 행보 원칙을 제대로 국민 앞에 제시해 더 이상의 논란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대통령 배우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의 위상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공식, 비공식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대통령 부인으로서 안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어떤 식으로 정리해서 해야 할지, 저도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국민들 여론도 들어가면서 차차 생각해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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