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사업 두고 조합·시공사 간 갈등 심화
공사비 증액·분양가 산정 놓고 팽팽한 입장차
이문 1·3구역, 신반포15차 등 분양일정 연기
전문가들 "정부 차원에서 대책 필요해"
재건축 사업을 둘러싸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원자재값이 급등함에 따라 공사비 증액, 분양가 산정 등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공사 지연은 물론 일반분양 일정도 밀리는 등 주택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20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의 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분양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동대문구 이문1·3구역의 경우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일반분양을 연기했다. 설계 변경과 분양가 산정 문제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를 641가구 규모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래미안 원페타스'도 조합이 높은 분양가를 받기 위해 택지비 감정평가를 늦추면서 오는 5월 예정이었던 분양 계획이 내년으로 밀렸다. 은평구 대조1구역 역시 철거가 끝난 지 오래지만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으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공사비 책정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 불안으로 시멘트·철근·목재 등 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자재값 상승은 공사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건설사들은 공사비 부담이 커지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조합 측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 사태도 원자재값 폭등이 주된 요인이다. 시공사업단은 자재 고급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야 한다며 2020년 6월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적·절차적 하자가 많은 계약인 데다 공사비를 증액하면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분담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값 폭등은 건자재값 상승으로, 더 나아가 공사비 부담으로 이어졌다"며 "기존 계약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남는 게 없는 장사여서 공사비 증액은 필요한데 조합의 부담도 늘어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양가 산정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시공사가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분양이 유일하다.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대출을 끼고 공사를 진행하는 시공사에선 분양을 통해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한다. 분양 일정이 늦춰지는 만큼 시공사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문제는 조합이 분양 시기를 늦추고 있다는 점이다. 분양가 상한제 때문이다. 분양 수익이 증가하면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적어진다. 하지만 조합과 시공사 마음대로 분양가를 올릴 수 없다. 분상제가 분양가 상승을 막고 있어서다. 조합들은 분양가가 적정하게 책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분양가 규제 합리화를 약속한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일정을 미루는 것.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이 커지면서 서울의 주택 공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은 총 4만7000여가구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분양을 했거나 입주자 모집공고를 한 단지는 3300가구에 불과하다. 둔촌주공(4786가구), 이문1·3구역(1972가구), 대조1구역(502가구), 래미안 원페타스(263가구) 등 4곳의 일반분양 물량은 7523가구에 달하지만 분양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체 공급 물량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감소는 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탓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값과 건축비의 상승 요인은 커지는데 일반분양가를 분상제로 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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