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4일 국내 첫 반려견 인지기능장애증후군(CDS) 치료제가 세상에 나왔다. 국내 바이오 벤처인 지엔티파마가 만든 '제다큐어'는 쉽게 말해 반려견의 치매 치료제다.
지엔티파마가 진행한 임상에서 치매 증상을 보인 반려견은 제다큐어를 복용한 후 4주만에 증상이 호전됐다. 치매 증상 완화가 아니라, 주인을 모르던 강아지가 다시 주인 얼굴을 알아보는 실제 치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제다큐어의 판매가 시작된 지 4개월, 전국 동물병원에서 이 치료제의 재구매율은 65%에 달한다.
제다큐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전 세계 반려견 시장에 효과 높은 치매 치료제가 처음 출시됐다는 것,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 치매 정복의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는 것이다. 제다큐어는 인간 치매 치료제로 개발 중인 '크리스데살라진'과 같은 물질이다.
지엔티파마는 뇌신경과학, 약리학 세포생물학 등 전문 분야의 교수 8명이 모여 지난 1998년 설립한 기업이다. 이들은 지난 23여년간 뇌졸중과 치매 등 뇌세포를 보호하는 신약 개발에 한우물을 파왔다. 지엔티파마가 개발하는 국내 첫 뇌졸중 신약 '넬로넴다즈'는 현재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며, 치매신약 '크리스데살라진'은 후기 임상1상 단계다.
곽병주 지엔티파마 대표는 "앞으로 10년 안에 치매 치료제와 같이 전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국산 신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2030년까지 3가지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해 전세계 50위권에 드는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다큐어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알츠하이머 치료에 엄청난 돈과 노력을 쏟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원인은 동물 임상에서 쥐 모델을 사용하는 데에 있었다. 쥐는 사람과 치매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쥐에서 효과가 있던 물질들도 사람으로 옮겨오면 모두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크리스데살라진은 기존 치료제들과 달랐지만 이를 증명하고, 인체 임상을 시작할 수 있는 비용을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드는 반려견 치료제로 우선 적용을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반려견의 알츠하이머는 사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첫 파일럿 임상에서 CDS 증상을 보이는 6마리 다른 종의 강아지에 이 물질을 투여했는데 모든 강아지가 4주만에 다시 주인을 알아봤다. 우리도 깜짤 놀란 성과였다. 임상 3상에선 45마리를 대상으로 확실한 효과를 확인했다."
-시장 반응은 어떤가.
"현재 유한양행을 통해 전국 470여개 동물병원에 제다큐어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재구매율이 65%라는 데 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 외에도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제다큐어를 처방받은 인지기능장애 강아지들 가운데 알츠하이머에 한해 약효과 나타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65%의 재구매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제다큐어의 성장 가능성은.
"동물의약품계의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반려견 숫자는 5억마리 이상으로 추산되며 시장은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강아지 수명도 늘어나면서 치매를 앓는 강아지도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치매 치료제 시장 규모를 20조원으로 추산한다면 동물용 의약품은 1조원 가량의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이미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안에 전 세계 많은 국가들에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엔티파마는 이제 인간의 치매 정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제다큐어와 같은 성분인 크리스데살라진은 전기 임상1상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현재 후기 임상1상 단계에 있다.
이제까지 나온 치매 치료제는 치매 증상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행을 늦출 뿐, 인지기능장애를 개선하진 못했다. 지난 6월, 18년 만에 미국 FDA의 조건부 승인을 받은 바이오젠의 '애드유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 역시 병의 진행을 늦추는 첫 치료제로 주목을 받았지만, 임상 3상에서 뚜렷한 인지기능 개선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했다.
곽 대표는 크리스데살라진은 제다큐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서 뚜렷한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나타나는 세계 첫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크리스데살라진은 뭐가 다른가.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독성 단백질이 나타나고, 타우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는 타우병증이 생기며 뇌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이를 알츠하이머의 3가지 증상, ATN(아밀로이드·타우·신경퇴행)이라고 한다. 그동안 개발이 시도된 대부분의 치료제는 아밀로이드 베타 즉, A에만 작용하는 한계가 있었다. 바이오젠이 개발한 아두카누맙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크리스데살라진은 A는 물론 TN에 모두 작용해 인지기능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세포배양모델에서 크리스데살라진이 타우병증과 신경세포의 사멸(TN)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크리스데살라진 상용화는 언제쯤 예상할 수 있나.
"치매 치료제는 임상 기간이 다른 치료제보다 길기 때문에 상용화 시점을 명확히 예상할 수 없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실험하는 후기 임상1상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이면 후기 임상1상을 끝내고 내년 하반기 임상 2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임상 기간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단 희망은 있다. 제다큐어의 경우 효과가 4주만에 나타나 예상보다 크게 단축됐다. 사람의 수명이 강아지의 5배라고 볼 때 사람에게선 최소 20주, 대략 6개월 정도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지엔티파마는 지난 8월31일 뇌졸중 치료제 '넬로넴다즈'에 대한 임상3상을 승인받았다. 국내 처음, 세계 두번째 뇌졸중 치료제다. 넬로넴다즈는 지난 해 12월부터 중국에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며 국내에서도 막 임상 3상 투여를 시작했다.
-넬로넴다즈의 경쟁력은 뭔가.
"기존 치료제는 대부분 막힌 뇌의 혈관을 뚫어주는 혈전용해제다. 혈전용해제와 혈전제거수술은 막힌 혈관을 뚫을 수는 있지만 뇌세포의 사멸을 막긴 어렵다.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과 영구 장애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넬로넴다즈는 뇌세포를 보호하도록 설계된 약이다. 우리는 1998년 설립할 당시부터 뇌졸중이 일어났을 때 뇌세포가 죽는 매커니즘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동안 뇌세포가 죽는 것은 단일경로라고 알려져 왔지만 우린 다중경로가 있다고 봤다. 여러 경로를 동시에 막지 않으면 뇌세포 사멸을 막을 수 없다는 명확한 이론이 있었다. 임상 결과, 넬로넴다즈를 투여했을 때 장애없이 완전히 회복하는 환자 비율이 위약 대비 4배 높았다."
-상용화는 언제쯤 가능한까.
"중국에서 진행 중인 임상 3상은 2023년, 국내 임상 3상은 2024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안에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뇌졸중은 전세계 사망률이 높은 질환 2위를 차지한다. 현재 뇌졸중 시장 규모는 5조원 규모다."
지엔티파마는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50대 기업 안에 드는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곽 대표가 내세운 '비전 2030'이다. 50대 기업에 들어가려면 처방약 기준 연 매출 2조5000억원 이상을 올려야 한다. 곽 대표는 2030년까지 치매 치료제, 뇌졸중 치료제를 포함해 블록버스터 신약 3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직 치료제가 전무한 치매 치료제 시장의 50%만 잡아도 10조원, 뇌졸중 시장도 2조원 이상 선점을 기대할 수 있다. 50대 기업의 꿈은 소박한 수준이다.
-기업공개(IPO) 계획은 없나.
"연내 상장을 목표로 했지만, 좀 더 가시적인 성과를 낸 후에 IPO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과의 기술이전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인만 하면 금세 끝날 계약도 있지만 장기적이 안목으로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는 중이다. 23년간 연구개발에만 매진해 온 기업이고, 이제 성과가 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행보는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기술이전을 일단 마무리하고 나면 IPO를 다시 추진해 볼 계획이다."
-23년의 노력이 이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
"과학자로서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한국이 개발하고 생산한 세계적인 신약이 아직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은 복제약(제네릭)을 통해 혜택만 받아왔지, 기여한 부분은 상당히 적다.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치매 치료제와 같은 신약을 개발해 세계에 기여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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