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수습기자들 명동, 홍대, 경리단길, 가로수길 현장 취재
외국인 관광객에 기댄 상권들 '직격탄'…매출 60~70% 줄어
명동 등엔 건물 한 두개마다 공실 쌓여, 일부는 '통임대'도
건물주들은 버티기 모드…"월세 안받으면 세금도 덜내" 반응
"44년째 명동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역대급이다. 사스나 메르스때도 이렇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언제 올지도 기약없다. 아침 8시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11시가 좀 넘어서야 하나 팔았다. 물론 한국사람이 사갔다."(서울 명동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강모 사장)
"공실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심하다. 지난해 15~20% 가량이 문을 닫았다면 올해는 빈 가게가 30% 정도로 늘었다. 견디다 못해 접은 것이다.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내리면 다시 올리기 힘드니까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아예 '통임대'만 기다리고 있다."(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상권들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쇠락하고 있다.
한때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까지 대거 몰려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서울 명동, 홍대,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이 대표적이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내국인들 발길까지 뚝 끊기며 1년 넘게 제대로 된 장사를 하지 못한 탓에 '웃음'이 '탄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적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견디지 못한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비어있는 곳이 지천이다.
그래도 건물주들은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모습이다. 공실로 월세를 안받으면 세금도 덜 내니 나쁠 것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2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1~4월 기준으로 방한외래관광객수는 2019년 당시 548만명이던 것이 지난해엔 절반에도 못미치는 207만명까지 줄어들더니 올해 들어선 27만명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발생 1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8분의 1까지 감소한 것이다.
이 가운데 그동안 한국을 가장 많이 찾았던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 역시 1~4월 기준으로 183만명(2019년)→61만명(2020년)→6만명(2021년)으로 크게 줄었다.
그만큼 관광객으로 먹고 살았던 서울의 주요 상권들도 타격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명동이 대표적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330㎡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 기준으로 명동의 공실률(올해 1·4분기 기준)은 38.4%로 같은 도심지역인 광화문(23%), 동대문(11.5%), 남대문(10.5%)보다 월등히 높았다. 도심지역 평균 공실률은 명동으로 인해 서울 평균(8.9%)보다 훨씬 높은 14.6%를 기록했다.
소규모 상가를 기준으로도 명동의 공실률은 38.3%로 충무로(10.4%), 남대문(8.1%), 종로(6.6%)를 압도했다. 명동을 포함한 도심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8.5%, 서울 평균은 6.5%로 명동의 빈 상가가 유난히 많은 모습이다. 소규모 상가란 2층 이하, 연면적 330㎡ 이하 일반건축물을 말한다.
명동의 경우 중대형 상가나 소규모 상가 모두 10곳 중 약 4곳이 비어있는 것이다.
실제로 찾아간 명동은 황량함 그대로였다. 건물마다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유리창 밖으로 눈에 들어왔다. 임대료가 비싼 1층 뿐만 아니라 2층, 3층 등 상대적으로 임대료도 싸고, 집객 효과가 떨어지는 층들도 한결같이 텅빈 모습이다.
명동에서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는 김모 사장은 "전멸이다.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보다 더 안좋아지고 있다. 중개업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 감정평가하는 일을 도우며 '투잡'을 하고 있다. 이달 들어 두명 정도가 찾아왔지만 내가 돌려보냈다"고 푸념했다.
김모 사장이 상가를 보겠다며 모처럼 찾아온 고객을 돌려보내며 한 말은 "망할 일 있어요"였다.
◆명동, 공실이 지천인데 임대료는 '복지부동'
명동의 상점들은 지난해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
명동에서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모 사장은 "내국인 외에 외국인 손님은 아예 오질 않는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다. 지난해엔 전년보다 매출이 60~70% 가량 줄었다면 올해는 80%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더 묻기도 미안하게 한모 사장은 "여기저기서 (기자들이)취재 많이 오는데 정말 힘든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지 않는 한 명동은 이 상태 그대로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전부 공실 딱지"라며 옆의 빈 가게를 가리켰다.
한때는 한류다 뭐다 해서 음반을 꽤 팔았다는 인근의 음반전문점도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60~70% 가량 줄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고객들이 가끔 찾아와 그나마 이곳이 명동이라고 느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주들은 장사를 하는 임차인들보다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기자가 문의한 명동내 한 골목에 있는 18평 규모의 1층 상가 임대료는 월 1000만원 수준으로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10% 가량 떨어졌다. 대부분의 가게들 매출이 절반 이상 추락했는데 임대료는 사실상 하락하지 않은 모습이다.
한 공인중개업소 사장은 "건물주들은 임대료 더 안내린다. 돈 있는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월세를 낮추겠느냐. 그들은 (임대료 내리면)건물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외국인 관광객들이 돌아와야 명동이 살겠지만 건물주들은 그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귀뜸했다.
코로나19 이전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한데 섞여 쇼핑을 하고, 먹거리를 찾아다녔던 마포 홍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홍대 역시 '임대'를 알리는 글씨가 곳곳에 붙어있다. 1층, 2층이 텅빈 곳도 있었다.
30년 동안 홍대거리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다는 김모 사장은 "30년 동안 흥망성쇠를 다 봤지만 지금이 가장 심하다. (1997년)IMF 시절엔 일부만 해당되고 (영향)범위도 좁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홍대 근처에 그 많던 게스트하우스도 지금은 텅 비었다. 당연히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커피숍은 지난해 말 코로나19 대유행 때는 하루 매출이 고작 1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하루 몇 만원어치 팔 때보다 상황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선 터무니 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버티며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저녁에 닫기를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질 날이 올 것이란 희망만 갖고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홍대에 있는 한 칵테일바 사장도 "(우리 가게에)그렇게 많이 왔던 외국인들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학생이나 외국인 대상으로 장사를 하던 홍대 가게들은 현재 모두 안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매출 떨어진 술대신 커피를 팔며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 칵테일바도 한때는 하루 매출이 몇 만원에 그쳤었다. 장사가 끝나고 정산하기도 마음 아픈 액수다. 그러다 지금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약 50% 정도 회복이 됐단다.
홍대 인근 경의선 숲길에서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은 "낮시간에도 술 취한 대학생이나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여기 사는 주민들 입장에선 조용하니 좋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누구에겐 생존 문제로 다가오지만 또다른 누군가엔 삶의 질로 바뀌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미군 떠나고 코로나에 우는 경리단길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이자 '○○○길'의 대명사인 용산 경리단길과 강남 신사 가로수길도 코로나19 직격탄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특히 용산 경리단길은 미군기지 이전과 함께 코로나19까지 찾아오면서 설상가상이다. 지난해 5월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유행이라는 멍에까지 짊어진 곳이기도 하다.
경리단길내 문이 닫힌 한 가게 유리창엔 '알립니다. 그동안 저희 ○○○을 찾아주신 고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6월9일부로 폐업함을 알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늘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씨가 보인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을 가게를 접으면서 써내려간 글쓴이의 심정이 그대로 읽혀져 먹먹한 느낌이다.
경리단길에서 38년간 참숯바베큐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사장은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이 한때는 2차로 새벽 3~4시까지 와서 먹던 가게가 여기였다"면서 "밤 10시만해도 북적북적대던 이곳이 지금은 미군부대도 빠져나가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하루에 서너 테이블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하소연했다. 미군부대 이전이 1차 쓰나미였다면, 코로나19가 2차 쓰나미인 셈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1·4분기 경리단길을 포함한 이태원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2.6%로 서울 평균 공실률(8.9%)의 3배를 육박하고 용산역(13.3%), 성신여대(13.1%), 잠실·송파(12.3%), 불광역(11.1%)을 훨씬 능가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이태원이 31.9%로 더 높았다.
경리단길에 있는 2층 규모의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일하고 있는 구모씨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40~60% 가량 손님이 줄었다"면서 "매출이 떨어지고, 일하는 사람도 줄었다. 지금은 혼자서 커피숍을 지키고 있다"고 귀뜸했다.
경리단길 인근에 사는 번모씨는 기자가 요즘 경리단길 상황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말 없이 한 건물을 가리켰다. 한때 손님들로 북적였다는 2층 규모의 그 건물은 현재 마치 철거를 앞둔 것처럼 휑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동네에서 맥주로 유명한 바(bar)였는데 요즘엔 1층만 운영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을 찾아, 좀더 싼 임대료를 찾아 경리단길로 장사를 하러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경리단길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 사장은 "임차인들이 워낙 빠르게 빠져나가다보니 임대료가 절반 이상 하락했다"면서 "중심상권의 빈 상가를 문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대표적인 상권인 가로수길도 빈곳이 태반이다.
기자가 찾은 날도 가로수길의 대표적인 상점인 애플스토어 앞에만 제품을 보거나 A/S를 하려는 이들이 눈에 띌 뿐 적막함 그대로였다.
애플스토어 바로 건너편 건물엔 한때 제법 장사가 됐을 법한 가게의 뜯겨진 간판자국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공인중개업소에서 만난 김모 사장은 "코로나19 직전까진 한달 월세가 7000만~8000만원 했던 곳들이다. 좀 적게 받아도 됐을텐데 너무 높긴 했다. 그렇다고 한번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주들이)예전처럼 올려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낮추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로수길보다 임대료가 싼 까닭이다. 월세 부담이 적다보니 가로수길이 아닌 세로수길에서라도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물론 가로수길이나 세로수길이나 코로나19 여파로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세로수길에서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원래 외국인 상권인데 외국인이 안오니 별수 있겠냐"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고 전했다.
인근에 있는 메밀소바 전문점도 매출이 50% 가량 줄었다. 종업원수도 기존 7명에서 지금은 주방 2명, 홀 2명으로 줄었다.
가로수길을 취재하는 중에 한쪽에선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들려온다. 한 병원이 가로수길 초입에서 개원을 준비하고 있고, 또다른 건물에선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가 매장을 새로 단장하고 있는 중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백신 접종이 늘어나고 하니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고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주하려고)이런 공사도 시작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가로수길내 한 편의점 사장은 기자가 "앞으로 어떻겠느냐"고 묻자 물건을 계산하러 온 손님을 쳐다보며 "좋아지겠죠? 그렇죠?"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자 그 손님은 "그렇겠죠. 힘내야죠"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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