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왜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화승총 때문이었다.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해서 조총(鳥銃)으로도 불렸던 화승총은 엄청나게 큰 소리와 불을 뿜어대 조선군을 놀라게 만들었다.
왜군들은 총병들이 조총을 새로 장전할 동안 궁수들이 활을 쏘고, 다시 장전된 조총을 쏘면서 조선군의 진열을 깨뜨린 뒤 기마병, 창병, 보병 등이 백병전을 벌여 승기를 잡았다. 왜군은 이런 전법으로 파죽지세의 기세로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군이 화승총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조총이 소개된 적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선조 22년) 7월, 대마도주(主)였던 소 요시토시(宗 義智)가 우리나라에 몇 개의 조총을 진상해왔다.
그러나 당시 조정에서는 이런 조총을 군기시에 사장시키고 말았다. 조총은 보통 1분당 2~3발을 발사할 수 있는데, 활은 1분당 8회까지 발사할 수 있어 효율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조총의 가능성을 못 본 것이며, 결국 전쟁에서 위기를 맞게 된 큰 패착이 되고 말았다.
지금 암호화폐로 온 나라가 난리다. 기득권을 장악한 부모세대에 밀린 MZ세대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암호화폐 투자에 나서기도 하고, IT를 잘 모르지만 뭔가 '돈이 될 것 같다'는 감으로 투자에 뛰어든 5060세대들까지, 거의 투기판을 방불케 할 정도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로 거래기록을 분산 저장하는 방식의 신문물, 신기술이다. 이 신기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과거 조선이 조총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 걱정된다.
우리 정부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시장에 일대 혼란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규제의 칼을 맞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디지털시대, 4차 혁명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에 대한 연구에 본격 착수하긴 했다. 중국은 아예 '디지털위안화(e-CNY)'를 정부의 공식 통화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며, 여기에 방해가 되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를 정책적으로 때리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도 암호화폐의 대대적인 규제와 단속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기술의 발달은 규제로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례에서 이미 봐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 주도의 디지털화폐들은 중앙은행이 통제권을 갖는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 또는 국가화폐(Govcoin)다. 비트코인 등 민간의 암호화폐는 '탈(脫)중앙화'를 목표로 개발됐지만 CBDC는 '초(超)중앙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같지만 추구하는 목적은 완전히 반대여서 CBDC가 기존 암호화폐의 대체재라고 반드시 규정하기도 애매하다. 전문가들도 두 종류의 디지털화폐가 상호 보완기능을 할 것이란 낙관론과, 둘 중 하나는 사라질 것이란 비관론이 서로 맞서고 있다.
한 때 우리나라는 'IT강국'으로 불린 적이 있다. IT강국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진흥정책 영향이 컸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무조건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민간에서 디지털화폐, 암호화폐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신문물을 거부했다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져 위기를 맞은 사례는 임진왜란 외에도 무수히 많다. 그런 실수를 더는 반복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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