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지난해 12월까지 KBO 총재 맡아…2012년 설립한 동반성장연구소에 전념
鄭 "동반성장, 파이 키워 공정하게 나누자는 것…불평등·양극화 유일 해법"
개념 넓지만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가장 절실…中企 육성 중요성도 강조
"자발적 참여 초과이익공유제, 정치권서 말한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달라"
"정부, 동반성장 과도한 개입 자제해야…중소기업 적합업종 '절반의 성공'"
2021년이 됐지만 1년 넘게 지구촌을 괴롭히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국가간, 계층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며 압축성장한 탓에 코로나19 이후의 불평등·양극화 심화가 우려되는 나라중 한 곳이다.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2012년부터 동반성장연구소를 꾸려 운영하고 있는 정운찬 이사장(사진)은 이같은 불평등·양극화의 해법으로 '동반성장'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사다.
정 이사장은 "한국 경제는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느라 우리 민족이 보유하고 있는 특유의 능력, 즉 홍익인간과 나눔정신 등을 간과해왔다"면서 "'동반성장'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작동 원리이자 현재 한국사회가, 더 나아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의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1순위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경제의 불평등 완화와 지속 성장을 위한 중기 과제로는 중소기업 육성과 노동시장 정상화를, 장기 과제로는 부정·부패 일소를 통한 사회 혁신과 유연하고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혁신을 각각 꼽았다.
정 이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동네에서 야구를 처음으로 한 뒤 야구의 매력에 쏙 빠져 '야구광'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60년이란 긴 세월이 훌쩍 흐른 지난 2018년 초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됐다. 지난해 말까지 KBO 총재를 역임하면서는 연봉이 높은 선수와 낮은 선수, 큰 구단과 작은 구단의 격차 완화를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KBO에서 꼭 동반성장과 관련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웃음)"며 짧막한 소회도 전했다.
'동반성장 전도사'로 불리는 정운찬 이사장을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만났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이사장께서 10년 넘게 강조하고 계신 동반성장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것 같다. 동반성장이란 무엇인가.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눠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함께 나눈다'는 말을 놓고 일부에선 상당한 오해를 하기도 한다. 부자가 가진 것을 뺏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다. 파이는 더 키우고, 나눔은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GDP를 100이라고 하자. 이 수준에서 부자는 80, 가난한 사람은 20밖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가정하자.여기에서 파이를 키워 GDP를 110으로 늘린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고 기존의 8대2 구조를 늘어난 만큼에 대해선 4대6로 분배한다. 부자들은 밥 먹고, 여유가 있는데 가난한 사람은 먹을 밥도 많지 않으니 더 많은 사람이 살기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다. 이렇게하면 GDP가 110에선 부자는 84, 가난한 사람은 26으로 각자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세계는 지금 불평등과 양극화 때문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나는 동반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을 들으니 동반성장이 꼭 기업간, 즉 일감을 주는 대기업과 하청받는 중소기업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만은 아닌 것 같다.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해보인다.
▲물론이다. 동반성장의 개념은 매우 넓다. 빈부간, 지역간, 수도권·비수도권간, 도농간, 남녀간, 세대간, 남북간 그리고 국가간에도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개성공단은 남북한간의 동반성장에서 의미가 있다. 연금은 세대간 동반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은 국가간 동반성장 사례다.
그러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이다. 대기업은 주로 부자이고, 도시 특히 서울에 많아 대·중소기업간 문제가 풀리면 다른 문제도 비교적 쉽게 풀수 있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에 실패하면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반성장에 성공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생겨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반성장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렇다. 코로나19 확산은 이를 극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격차 해소를 우리에게 시대정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의 하나로 기업간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반성장을 꼽을 수 있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포함한 저소득 취약계층의 성장을 돕고, 과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성장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기업생태계부터 선순환체계로 전환해야한다. 대기업의 글로벌 능력과 기술력, 그리고 중소기업의 다양성과 신축성, 벤처기업의 창의성 등 각자의 장점을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게 우리 경제가 활력을 찾고 지속성장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코로나19 재확산 시기인 지난해 말 정치권에서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꺼내들면서 이사장께서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주장하셨던 초과이익공유제가 다시 집중을 받기도 했다. 기자가 판단하기에도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초과이익공유제는 분명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이를 혼동해 쓰기도 했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다시 정의를 해 달라.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면서 추진했던 동반성장 정책 세가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사업 중소기업 발주, 초과이익공유제였다.
이 가운데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 일부를 협력중소기업에 돌려줘 이를 기술개발, 해외 진출, 고용 안정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초과이익공유제는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시행 초기엔 적지 않은 반대의견(2011년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국가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 공산주의 국가 말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 경제학 책에서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도 있었다. 일부의 주장처럼 결코 반시장적인 사회주의 발상이 아니다.
물론 '코로나 이익공유제'와도 차이가 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정치권이 먼저 이야기해 기업이 압박받을 수 있다. 또 그 범위와 대상은 어떻게 선별할까. 결국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강제성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고, 자칫 '초과이익공유'가 아니라 '초과세금'이 되기 싶다.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초과이익공유제가 '보상적 차원'의 정책이라면 강제성이 우려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시혜적 차원'의 정책이다. 성격 자체가 다르다.
-이익공유제는 우리보다 자본주의가 앞선 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실천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사례들이 있나.
▲이익공유는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 태동기에 처음 도입돼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밑바탕이 된 제도다. 제작자와 감독, 배우가 영화를 통해 얻은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약속한 '러닝 개런티'가 그것이다.
이것이 발전해 미국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와 에어컨을 제조하는 캐리어가 목표이익 초과분에 대해 협력사에 보너스를 지급하는 '수익공유계획'을 도입·시행했고, 영국 롤스로이스도 '판매수익공유제'를 하고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미국의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리그(NFL)도 동반성장 가치로 이익공유를 실천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리그를 만든 사례다. 당초 AFL과 NFL로 나눠졌던 미국 미식축구리그는 무한경쟁 때문에 구단의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됐었다. 그러다 두개 리그를 하나로 통합했고, 구단별 수익불균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익공유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 구별 없이 32개 모든 구단의 전력이 상향 평준화됐고 리그, 구단, 선수가 모두 성공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모범이 됐다.
-3대 동반성장 정책 중 하나였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당초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는가.
▲우선 동반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과도한 개입을 자제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만 정부는 법적,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장의 감시자로서 건강한 생태계 조성의 조력가로서 역할을 적극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만 놓고보면 '아직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것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혁신과 변혁을 촉진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아직 이같은 중소기업이 많이 나타나지 않아 이런 의미에선 '절반의 성공'이라고 본다.
이후 나온 생계형 적합업종도 동반성장을 추진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위해선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의견이 '틀렸다'고 하기보단 '다를 수도 있다'고 하는 포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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