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마승철 나라셀라 회장, 5대 주류수입협회장 취임
-"중소 주류 수입업체 목소리 대변할 것"
-종량제 전환·주류 온라인 판매 등 과제 산적
"졸업하고 술 파는 회사에 들어가니 첫 해 내내 술만 먹이는기라. 얼마나 회의감이 들었겠노. 대학교 동기들은 냉장고도 만들고, 수출도 한다카는데 우리는 지하에서 술만 퍼마시니. 그만 두려고 오른 북한산 정상에서 딱 마주친 기 막걸리 마시는 사람들이었는데, 너무 아름답더라. 막걸리로 땀을 식히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술이 높은 산을 오르다가도 쉬었다 다음 단계를 가게끔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사표를 접었다 아이가."
한국주류수입협회 5대 회장으로 취임한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62·사진)에게 술은 문화다. 대화의 소재가 되고, 음식의 파트너가 되는 좋은 술을 선보이는 것. 평생을 술판에 머물게 하고, 이번에 주류수입협회까지 이끌게 한 원동력이다.
◆수입주류,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주류수입협회는 2002년에 만들어졌다.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사실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는 주류사와 달리 수입사들은 규모 자체가 작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었다.
이젠 상황이 좀 달라졌다. 와인과 맥주 할 것 없이 수입주류의 규모가 가파르게 늘었다.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등판을 노릴 수 있을만큼 판이 커졌단 얘기다. 소위 '개취(개인의 취향)'를 중요시하는 2030들이 주(酒)류 시장의 주(主)류로 떠오른 것도 한 몫을 했다.
마 회장은 먼저 많은 수입사들이 협회에 들어오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회원사는 60여개다. 등록된 주류 수입사 900여개의 10%도 안된다.
그는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 200~300곳이라고 해도 현재 회원사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기업 계열 수입사를 비롯해 많은 곳이 협회 참여를 고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회원사를 대변해 이해관계자와의 조율을 담당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와인 페스티벌 개최 등 협회 스스로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 목표다.
◆OECD 국가 중 한국, 폴란드만 금지된 것은?
OECD 가입국들 가운데 한국과 폴란드에서만 금지된 것이 있다. 바로 주류 온라인 판매다. 술과 관련해 규제가 엄격한 인도마저도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주류 온라인 판매를 풀어줬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술을 주문할 수 있는 주류 스마트오더가 시행됐다. 여전히 수령은 직접 가서 받아와야 하지만 일단 첫 단계는 밟았다는 생각이다.
마 회장은 "장기적으로 시장과 시스템은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첫 발을 디디지 않고는 목표에 달성할 수 없듯이 주류 스마트오더 역시 아직은 다소 번거롭지만 주류 온라인 판매로 진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뀐 시장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규제로만 대응하다보면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 사실 SNS나 인터넷 등에서는 와인을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주는 곳도 많다. 온라인 판매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잘못된 형태의 시스템이 생기면 정상 판매자 등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며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도 편리하게 술을 살 수 있게 하되 청소년 보호 등을 명확히 하고, 이를 어기면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수입주류에 대한 과세체계 개선도 해묵은 과제다.
지난해부터 술에 매겨지는 세금이 종가세(가격 기준)에서 종량세(용량·알코올 함량 기준)로 바뀌었지만 맥주와 막걸리에만 적용됐다. 와인 등에 대해선 종가세가 그대로 유지됐다. 정부는 향후 종량세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단계적인 절차나 일정 등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
마 회장은 "와인을 예로 들면 종가세로 세금이 많이 붙다보니 상대적으로 싼 일본이나 홍콩에서 사오고, 한 병씩 더 들여오는 것을 적발하는 비효율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잘못된 주류 과세체계가 낳은 최고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와인판매 사상 최대
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수입 규모는 3억3007만 달러다. 3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수입가에 세금 등을 고려한 작년 국내 와인시장 규모는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와인수입 규모는 지난 2008년 1억6651만 달러를 정점으로 내리막을 걷다가 2015년 전후로 다시 살아났으며, 지난해 와인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마 회장은 "2008년은 와인이 부유층 등 특정 계층에 한정된 술이었던 반면 지금은 가정에서나 모임에서나 기본적으로 찾은 술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며 "팬데믹이 가속화 요인은 됐겠지만 이전부터 수요층이 탄탄하게 커지면서 와인시장이 성장할 기반은 마련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 회장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인생 와인이었다. 주류 시장에 인생을 바쳐온 그가 선택한 와인은 몬테스 알파다. 나라셀라를 인수한 이후 통과해야 할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으니 사실 선택이라긴 보단 운명의 와인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마 회장이 나라셀라를 인수하자 와인을 공급하던 많은 와이너리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제대로 해낼 수 있겠냐는 물음이다. 공급을 그만해얄거 같다고 한 곳도 있었고, 끝내 거래 관계를 끊은 곳도 있다. 그러나 몬테스는 놓칠 수 없는, 놓쳐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마 회장이 와이너리 가운데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몬테스다.
마 회장은 "몬테스 당시 회장이 했던 질문이 일주일에 회사에 몇 번 가냐는 것이었다"며 "매일 간다고 하자 한 번 믿어보겠다고 했지만 신뢰를 쌓기까진 2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와이너리들과의 관계를 탄탄히 다져놨으니 이제 풀어야 할 숙제는 와인을 친근한 문화로 만드는 일이다. 나라셀라가 와인바를 유흥가가 아닌 아파트 상가 '슬세권(슬리퍼+세권)'에 오픈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삼겹살에 소주를 먹던 동네 골목에 호프집이 들어선 것처럼 앞으로는 가족들과 가볍게 와인 한 잔 하러 와인바에 갈 것"이라며 "와인과 함께 문화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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