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억눌러 왔던 소비를 한 번에 분출하는 '보복 소비'가 일어나고 있다. 보복 소비는 질병·재난 등 외부 요인으로 억눌러 왔던 소비를 이후 한 번에 분출하는 현상이다. 특히 보상심리에 의한 사치품 소비가 증가하는 '소비 양극화'가 눈길을 끈다.
◆명품·보석 등 사치품 소비 증가
골목상권과 영세 상인은 여전히 어렵지만, 백화점과 명품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상태와 비슷하게 오르고 있다. 유통업계는 그동안 억눌러 온 소비 욕구가 한 번에 분출하는 '보복 소비'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명품과 보석을 비롯한 사치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침체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 23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정기 세일에 들어간 이달 3~7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세일 기간(3월 27일~4월 2일) 대비 전체 매출은 15.4% 줄었지만, 최상위급 브랜드가 속한 '해외 부티크'는 5.4%, '해외시계·보석' 부문은 27.4% 증가했다.
같은기간 현대백화점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전체 매출이 12.6% 줄었지만, 명품 부문 매출은 5.3% 증가했다. 특히 고급 보석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8.7% 늘었다.
신세계백화점도 전체 매출은 15.4% 줄었지만, 명품 매출이 0.8% 증가했다. 그중 고급 시계 매출이 2.0% 늘었다.
고가의 패션업계도 보복 소비 특수를 누렸다. 한섬 브랜드 중 최고가에 속하는 랑방 컬렉션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35% 신장했고, 한섬 대표 브랜드 타임도 1분기 온라인 판매가 58% 급증했다. LF가 수입하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이자벨마랑은 올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 늘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수입·판매하는 톰브라운도 올해 들어 최근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밀레이널 세대들은 명품소비를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한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통해 받은 스트레스를 고가의 명품소비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명품 매출 증가는 '소확행'이자 자아실현적인 소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원지는 중국
'보복 소비' 현상은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였던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11일 광둥성 광저우의 최고급 쇼핑몰 타이구후이에 위치한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는 두 달간 폐쇄 후 다시 열었다. 이날 다이아몬드가 박힌 수억 원대 희귀 가죽 가방까지 팔렸으며, 하루 매출 270만 달러(약 32억9000만 원)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단일 명품 판매장 사상 최고 실적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코로나 이후 '보복 소비'라는 새로운 열병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보복 소비' 현상을 보는 유통업계의 시각은 복잡하다. 소비자가 갑자기 매장에 몰려 '2차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일어날 경우, 유통업계 전체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보복소비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거나 경제 위기가 오래갈 경우 중산층의 과소비가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매출 회복은 다행이지만, 2차 전염병이 오면 매출 하락이 장기화할 수 있다"며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마케팅 하기도 곤란하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기도 아쉽고, 이래저래 곤란한 입장이다"고 밝혔다.
◆코로나 19사태 이후 대비는
유통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 억눌린 소비 표출은 쇼핑에 한정돼 있지만, 점차 타 업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호텔·여행업계도 코로나 사태 이후 항공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제주도관광협회는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7일간 17만9000여명이 제주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늘어날 수요에 대비해 다양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특히 온라인·모바일 서비스의 대대적 개선과 함께 오프라인 매장 개선에도 함께 나섰다.
롯데 호텔 관계자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라 제주도뿐만 아니라 호텔을 찾는 손님이 코로나 사태 직후 보다 늘었다. 이번 황금연휴를 기점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코로나사태 이후도 고려한 프라이빗 서비스와 패키지를 점차 늘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서용구 교수는 "소비 양극화는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계층이 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보복소비를 통해 현상이 확인된 것뿐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명품소비 및 사치를 통한 자아실현 소비패턴은 지속할 것"이라며 "유통업계는 코로나 이후에도 이러한 소비 트렌드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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