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갑작스런 요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개정 협정' 수순으로 들어간 가운데 향후 협상 과정과 주 협상 품목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미국의 이번 요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 "양국간 무역불균형 원인 조사 먼저 요구할 것"
산업통상자원부는 13일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하는 미국무역대표부(USTR)명의 서한을 주미대사관을 경유해 접수했다고 밝혔다.
미측은 이번 서한에서 미국의 심각한 대(對) 한국 무역적자를 지적하면서 한미 FTA의 개정 및 수정 가능성을 포함한 협정 운영상황을 검토하고자 한다며 협정문 규정에 따라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했다.
산업부는 "미측은 '재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한미 FTA 조문상의 용어인 '개정 및 수정'을 사용하고, 이를 위한 '후속 협상(follow-up negotiation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당사자 일방이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소집 요구를 하면 상대방이 원칙적으로 30일 이내 FTA 공동위원회 개최에 응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 산업부내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포함하는 우리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송부돼 있는 만큼 우리측 공동의장인 통상교섭본부장이 임명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미측과 실무협의를 통해 향후 개최 시점을 정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한미 FTA 협정상 우리가 반드시 미측의 FTA 개정협상 제안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공동위에서 개정협상 개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추후 공동위원회가 개최돼 미측이 한미 FTA 개정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경우,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말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제의한 바와 같이 양측 실무진이 한미 FTA 시행 효과를 공동으로 조사·분석·평가해 한미 FTA가 양국간 무역불균형의 원인인지를 먼저 따져보는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개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협상 개시하려면 합의가 우선 필요
한미 FTA 협정문은 한쪽이 공동위 특별회기 소집 요구를 하면 별도의 양측 합의가 없을 경우 상대방은 30일 이내 개최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 22조2항에 따르면 공동위는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되며 협정 이행감독, 규정해석, 개정 검토, 협정상 약속수정 등에 대해 의견일치로 결정한다. 이는 공동위가 협정 개정 검토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미국은 이를 토대로 공동위에서 한미FTA 개정협상 개시를 제안할 것으로 산업부는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는 "공식적인 요청이 있을 경우 공동위를 개최해 개정 여부를 검토할 의무는 있지만 실제 개정협상에 착수하려면 먼저 양측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정협상 개시를 위해서는 한국은 통상절차법, 미국은 무역촉진권한법(TPA)에 따라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은 양측이 개정에 합의하게 되면 우선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한 뒤 공청회를 개최한다. 이후 통상조약체결 계획을 수립하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거쳐 국회에 보고하는 수순이 이어진 뒤 개정협상 개시를 선언할 수 있다.
미국은 현상개시 90일 전에 의회에 협상 개시의향을 통보하고 연방관보 공지와 공청회 등을 진행한다. 이후 협상개시 30일 전에 협상목표를 공개하고 개정협상 개시를 선언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과 미국이 협정 개정에 합의하게 되면 양측은 다시 국내 절차를 밟게 되고 이후 양측이 합의한 날에 개정 협정은 발효된다.
만약 원만하게 개정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협정을 폐기할 경우에는 한쪽의 서면 통보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다른 쪽 의사와 상관없이 서면통보한 날로부터 180일 이후 협정이 자동종료된다. 협정이 종료되면 양국 간의 특혜관세는 즉시 모두 사라지게 된다.
◆미국 자동차· 철강 공세 나설 듯
공동위에서 미국은 한미 FTA로 인한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를 이유로 들며 협상 개정을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불공정 무역의 대표적 사례로 꼽은 자동차와 철강 무역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동차의 경우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국의 주장대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무역은 아니지만, 미국의 인식은 다르다.
또 미국은 한국산 철강제품의 덤핑과 한국을 통한 중국산 철강의 우회덤핑도 큰 문제로 제기한 바 있다.
이외에도 법률시장 개방, 스크린 쿼터제,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허용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통상전문가들은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이 적자를 보는 지식재산권과 여행 서비스, 한미FTA 체결 당시 논란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부분에서 한국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무역적자의 원인이 한미 FTA가 아니라 양국 경제 기초와 수요의 차이, 거시 경제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설득할 계획이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은 "미국의 공동위 개최 요구만으로 개정 협상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라며 "한미 FTA의 상호 호혜성과 미국이 우려하는 무역적자 감축 방안 등에 대해 공동위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