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집인 김 모씨(30·여)의 집은 설이면 언제나 친척들로 북적였다. 아침 차례와 세배를 마친 뒤엔 다함께 외식도 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조금 달랐다. 김 모씨는 "올해는 사촌동생들이 취업준비를 위해 설 연휴에도 도서관에 간다고 빠졌고 차례상도 눈에 띄게 간소해졌다"며 "세배를 마치곤 친척들과 외식도 않고 집에서 떡국만 먹고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팍팍한 살림살이에 가족끼리 정(情)을 나누는 것도 사치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의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당장 올 설을 앞두고 서민들은 높아진 장바구니 물가에 차례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상차림을 간소화했는가 하면 친지 간 설 선물도 최소화했다.
직장인 이 모씨(35)는 "지난 추석만 해도 가까운 지인 집을 방문해 설 선물과 덕담을 나누곤 했는데 올해는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경제적 여유도 없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사로 명절 인사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 주요 백화점의 설 선물 매출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5일부터 이달 22일까지 판매 기준 설 선물 매출은 각각 전년 대비 롯데백화점이 1.2%, 현대백화점이 9.1%, 신세계백화점이 2.9% 감소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기불황에 청탁금지법이 더해지면서 올해 설 선물 매출이 전년 대비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한국경제의 저성장세도 민간소비심리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은 그대론데 물가와 금리는 연일 상승곡선을 타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1월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분기 연속 0%대 성장에 머물고 있다. 전분기 대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2015년 4분기 0.7% 이후 이듬해 1분기 0.5%, 2분기 0.8%, 3분기 0.6%, 4분기 0.4%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한 이 같은 추세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 지난 2015년 이후 3년 연속 2%대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저성장 국면에 서민들은 우선적으로 씀씀이를 아낄 수 있는 의류 구입이나 외식비 등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지난 10일부터 17일까지 전국의 22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1월 소비지출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를 살피면 외식비 지출전망지수의 경우 87로 지난 2013년 4월(86)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의류비 역시 같은 기간 96으로 지난 2013년 2월(95) 이후 3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CSI는 기준이 되는 100보다 작으면 향후 6개월간 지출을 줄일 것으로 응답한 가구 수가 늘릴 것으로 응답한 가구 수보다 많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소비지출을 줄이면서 국내경제의 중심축이 되는 민간소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며 "이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 부진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