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한국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난 2008년 당시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8년이 지난 현재 25곳이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조선·해운·철강 등 성장기 한국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업종은 지고, IT(정보기술)·유통·화장품·제약 등이 자리를 메웠다.
시장에서는 2017년이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가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한다. 하드웨어 중심·수직 계열화 산업구조를 깨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시총 변화는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부동의 1위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254조9110억원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16년째 1위다.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전환, 배당금 증액, 분기 배당 시행 등을 골자로 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와 내년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해 올해 총배당 규모를 4조원 규모로 작년보다 30% 가량 확대하고 분기 배당 실시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주사 전환과 관련해선 '6개월의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는 정도였지만 시장에서는 공식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줘 올해 총 배당 규모를 4조원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약속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처음 공론화했다는 측면에서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된다"면서 "하만 인수 이후 탄력적인 전장 사업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가상·증강현실(VR·AR) 분야 등으로 진행할 적극적인 인수합병 전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요 증권사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속속 200만원대로 높이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이 230만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제시해 놓은 가운데 신한금융투자(220만원), 한화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210만원), 대신증권(208만원), 현대증권(205만원) 등이 200만원대 주가를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2조8693억원으로 2위 자리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31조6097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한 단계 내려간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6위·25조2121억원), 기아자동차(16위·15조9510억원)가 시총 20위권에 진입하면서 현대차 3인방이 모두 시총 '톱20'에 이름을 올렸다.
업체별로는 네이버(5위)와 삼성물산(7위) 등이 시총 10대 기업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시가총액 상위종목 간 자리 경쟁은 최근 증시 변동성의 지속적인 확대 우려로 당분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즉, 국내 증시 대표 대형주들이 당분간 불안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몇년새 대형주 시가총액 변동이 극심한 것은 전통 강자였던 자동차·철강업 악화 등 구조적 변화도 일부 반영하지만, 동시에 주식시장이 다소 투기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기업 펀더멘털 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중국 소비테마, 미국 금리 인상 등 이슈에 따라 크게 휘청이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역동성은 갈수록 떨어진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5년 동안 연평균 28.4%를 기록했던 시가총액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6~2010년 동안 13.6%로 하락했고, 2011~2015년에는 3.2%로 더욱 낮아졌다. 시가총액은 지난 5월 기준 1472조9000억원이다. 반면 세계 시가총액은 2012~2016년 4년간 52조5000억달러에서 63조1000억달러로 20.3% 증가했다.
연구원은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기업 중에서 젊은 기업의 비중이 줄고,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 새로 진입하는 기업의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며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 새로 진입하는 기업의 비중이 증가세"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기업이 설립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동력이 우리나라는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활력을 높이고 성과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대따라 순위 경쟁 치열
기업 순위 변화는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세계 최대 교역 상대국 미국이 세로운 경제 질서 재편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덩치면에서 우리나라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전체 수출의 13.3%인 698억 달러어치를 미국에 팔아 258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교류는 지난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덩달아 통상마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대(對)한국 보호무역 조치 건수는 2000~2008년 2573건에서 2009~2016년 2797건으로 증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을 외치고 있다. 국제무역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각종 무역협정의 재협상 또는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워 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수출주도형인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일단 핵심 공약이었던 인프라 투자 관련주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고속도로, 다리, 터널, 공항 등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확대를 공언해 왔다.
트럼프는 또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자유무역협정(FTA)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발톱을 세우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도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 구조를 좀더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며 규제개혁의 실효성 제고와 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권고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 등을 매개로 하는 산업적 격변을 가리킨다. 그는 소프트웨어와 창의력, 개방적 구조, 유연성 확보 등 4가지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 기반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