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입니다. 쉽지만 균형 잡기가 힘들죠. 입맛에 맞는 먹거리만을 찾다가는 쓰러집니다."(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13년 '2차 한국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하며 저성장을 극복할 체질변화를 주문했다. 3년여가 지난 한국은 냄비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8%(2016년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경제성장률 전망), 0.3%↑(정부예상 2016년 설비투자 증가율, 2015년 5.3%↑), 0.8%(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우려케 하는 한국경제의 현주소이다. 성장둔화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반대로 물가 둔화는 가계·기업의 소비와 투자 욕구를 떨어뜨려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민·관의 공조와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기업의 체질 변화를 주문한다.
◆브렉시트 충격에 한국경제 뒷걸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로 한국경제가 또 한차례 고비를 맞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ML)는 브렉시트에 따른 한국 경제 성장률이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0.02%포인트, 0.06%포인트 가량 조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의 영국 수출 비중(GDP대비 0.56%)이 크지 않다는 데 근거한다.
씨티은행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조정폭을 -0.1~-0.2%포인트로 예상했다.
다만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글로벌 금융불안이 여파가 확대된다면 올해 최대 -0.04%포인트, 내년 -0.11%포인트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노무라증권은 "대외경기 불확실성이 구조조정 중인 조선·해운업의 수주 회복 지연으로 연결되고, 투자·고용 등에 미치는 2차 효과를 감안하면 올해 성장률이 0.3%포인로 감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홍콩(-1.0%포인트), 싱가포르(-0.7%포인트) 등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중국은 -0.2%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기업실적은 둔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 외부감사 대상 법인 3065곳을 표본 조사해 발표한 '1분기 기업경영분석'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조사기업의 매출액은 작년 1분기보다 2.0% 줄었다. 이는 국제유가 하락과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로 인한 수출액 감소의 영향 탓으로 분석된다.
최악의 경우 한은의 성장률 목표치인 2%대 달성도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0.5%에 그친 바 있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그나마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내수마저 다시 위축돼 불황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저성장의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5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0.8% 올랐다. 2월부터 3개월 연속 1%대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0%대로 떨어진 것.
기업들은 몸을 움츠리고 있다.
국내총투자율은 작년 4·4분기(28.7%)에서 1.3% 포인트 떨어진 27.4%로 집계됐다. 1분기 국내총투자율은 2009년 2분기(26.7%)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설비투자가 전년 5.3%에서 올해 0.3% 증가로 증가 폭이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시장수요 부족의 장기화로 잉여생산능력 문제가 지속되면서 전형적인 침체 국면에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 '성장절벽' 탈출 해법은
브렉시트는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짐이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기 부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정부도 시장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추가경정예산(추경) 10조원을 편성하기로 했다.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리겠지만 충분한 돈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브렉시트의 불확실성 차단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2016 추경 편성 방향 제언' 보고서를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최대 26조6000억원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의 홍준표 연구위원은 "고용창출 효과가 높으면서도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총요소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로 추경 예산이 배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느리게 가는 자전거(한국, 맥킨지)'를 밀고 끌어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맥킨지 최원식 대표는 "뉴 노멀(Normal) 시대의 경영 환경은 기업들이 입맛에 맞는 먹거리를 고르기 어렵게 되었다"며 "한국 기업들도 어떤 먹거리라도 잘 소화시키는 체질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도 "만성적 저성장을 막으려면 단기적 재정·통화정책보다 중장기적으로 출산, 보육, 교육, 서비스업 육성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기부진의 원인이 낮아진 성장잠재력 때문이라면 부양책보다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으로 경제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믿음은 여전하다.
S&P의 킴엥 탄 선임이사는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가 지속되고 대외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3∼5년 후에 한국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도 지난 23일 "역외 수요 부진 속에 한국의 수출 의존형 성장 모델이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의 재정 및 제도, 역외 평가 요소는 같은 등급의 다른 국가 대비 견조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고 메시지'에는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S&P 신용평가사업부는 한국의 잠재적 신용리스크로 ▲높은 가계부채 ▲주택 수요 약화 ▲조선ㆍ해운ㆍ건설 업종의 취약 기업 등을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