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 4500억원대 매출로 국내 회계업계의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9월과 11월 두 차례 연달아 곤욕을 치러야 했다. 삼일은 지난해 9월 대우건설 부실감사 의혹을 받더니 2개월 뒤인 11월에는 소속 회계사들의 부정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서울남부지검은 회계사들이 피감(被監)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한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해당 수사로 삼일 소속 회계사 26명이 적발됐고, 이 중 2명은 구속됐다. 지난 2013년 동양그룹 사태로 피해를 본 소액 투자자들이 당시 동양네트웍스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일에 집단소송을 낸 건도 현재 진행 중이다.
#2. 안진회계법인은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감사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았던 안진은 회사의 부실회계를 사전에 적발하지 못하고 손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안진이 대우조선의 누적 손실을 고의적으로 숨겼는지에 대한 회계감리를 실시하고 있다.
#3. 삼정KPMG 역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최근 감사 대상 회사의 주식을 보유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이른바 외감법을 위반한 회계법인 12곳을 발표했는데 삼정 소속 회계사가 7명으로 가장 많이 적발됐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증선위가 삼정에 외감법 위반 사건과 관련된 회사에 대한 감사제한 조치를 내렸는데, 삼정이 감사인이던 상장사 중에 규모가 꽤 큰 곳이 많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삼일·안진·삼정·한영 등 이른바 '빅4'로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최근 부실 감사와 비리로 얼룩지면서 시장의 질타를 받고 있다. 한영회계법인은 그나마 눈에 띄는 악재가 발생하지 않아 타격이 적은 편이지만, 나머지 3사는 도덕성과 이미지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회계법인과 피감회사인 기업의 뿌리 깊은 유착관계가 부실회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6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안진은 지난 2010년부터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를 맡아 왔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의 2조4000억원 규모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 안진이 부실감사를 했다는 의혹이 잇따른다. 안진은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대우조선해양의 감사 의견을 '부적정', '의견거절'이 아닌 '적정' 의견을 내왔다. 업계에서 안진의 부실회계로 인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회사는 지난 3월 지난해 대우조선 감사 과정에서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 중 약 2조원을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우조선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오류를 시인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일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 자율협약 신청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에서 나타나듯 회계법인과 기업간 유착관계가 만연해 고질적인 부실회계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약과 보수 등을 사적영역에 맡긴 자유수임제 아래 회계법인의 저가 회계 수주 여파로 기업과 회계법인간 '갑을(甲乙)' 관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착관계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공성을 가지는 회계법인이 '을(乙)'의 위치여서 '갑(甲)'인 기업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실시하기 쉽지 않은 구조이다.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 계약 체결과 관련, 권한을 쥔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게 회계법인들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회계법인의 부실감사가 끊이지 않는 건 당국의 '솜방망이'에 불과한 징계 탓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 지난 2013년 무려 4만명이 1조3000억원 가량의 피해를 본 동양사태의 부실감사는 회계사 9명의 징계로 마무리됐다. 이 중 그나마 강력한 처벌이 직무정지 6개월에 불과했고 나머진 동양쪽 감사업무에서 빠지거나 몇 시간의 연수를 받는 정도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이제라도 제도를 강화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을 물려야 한다"며 "당국의 강력한 처벌만이 제2, 제3의 대우조선과 동양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빅4' 회계법인들이 외부감사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회계와 감사의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2014 사업연도 기준 '빅4'는 외부감사 시장의 56.9%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150여 개 법인이 43.1%를 나눠 먹는 구조다. 또한 회계법인에 속한 회계사 중 54.3%는 '빅4'에 몰려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용이나 인력 등 감사시장 자원의 절반 이상을 '빅4'가 가져가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같은 대형 이슈가 터지면 이들을 대체할 만한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3월 삼일이 현대상선 감사보고서에서 적정 의견을 낸 뒤 부실감사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정 역시 STX조선해양에 대한 부실감사 혐의로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동종 업종인 삼성중공업의 실사를 맡고 있다. 사실상의 '돌려막기'라는 지적이다.
부실감사에 대한 회계법인의 강력한 처벌과 제재도 요구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지난 1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 집중'을 통해 "부실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의 경우 엄정히 처벌해 경우에 따라 영업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회사는 이익을 좀 늘리고 손실을 줄여 회계를 그야말로 근사하게 만든 뒤 추가적인 대출을 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회계분식"이라며 "분식된 상태를 적발하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회계법인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이어 "(안진의 경우)지금도 대우조선해양하고 그 다음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에 회계법인이 나가 실사하고 있는데 실사 결과를 믿지 못할 상황이다"며 "그렇게 되면 이걸 토대로 하여 또 구조조정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는 얼토당토 않다"고 지적, 부실감사를 하는 경우에는 엄정히 처벌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영업을 당분간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