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타고난 자질을 스스로 진화시키거나 발전시키는 것은 교육을 통한 경험과 훈련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나는 작은 단추 만들기로 사업에서 시작해 패션을 거쳐 레스토로터(restaurateur)가 되기까지 지난 20년 동안 작게는 66㎡(20평)에서 크게는 수천㎡의 복합 상권 공간 및 MD 구성을 수도 없이 기획해왔다. 20년간 축적한 경험으로 웬만한 상업 공간의 기획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나에게도 여의도 전경련 회관의 50층과 51층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그러나 반드시 풀어보고 싶은 숙제였다.
다양한 기업이 입주해 있는 사무적이고 담백한 오피스 빌딩. 전경련, 단어만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았던 단체. 게다가 웰메이드 하이테크로 지어진 문턱 높은 이 건물의 50층에 고객의 유입률을 높일 수 있을까. 하지만 51층에 올라가 대한민국 서울의 전망이 다 보이는 360도의 파노라마 뷰와 하늘 정원을 접해본 후 나의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51층에 조성된 텃밭을 가꾸고 그 텃밭의 야채를 사용해 50층 레스토랑에서 조리해나가는 과정,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텃밭을 가지고 요리를 만드는 셰프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른바 '요리사의 정원(Chef's Garden)'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들 기회를 준 전경련이라는 단체를 사랑하기로 했고, 이 단체 또한 홍보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것이 상생의 길이므로….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이름을 짓고, 어떻게 그 브랜드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나는 항상 답을 프로젝트 안에서 찾고 그 '다움'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전경련이라는 단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리더들의 단체이고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그들이 대표적인 사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농업과 상생을 논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에서 시작한 컨셉인 '농사짓는 전.경.련'. 그 가운데서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도 나오는 사대부들이 모인 그곳의 곳간. 그렇게 탄생시킨 '사대부의 곳간'이라는 이름을 짓고 보니, 나는 실상 사대부가 하는 역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위급상황 때 마다 촌철살인으로 답을 주시는 조용헌 선생님께 SOS를 구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무엇으로 스토리텔링 해야 할까요"란 질문에 단 10초의 망설임도 없이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이 두 마디로 거침없이 시작된 사대부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사대부집 문 앞에서 '이리오너라'를 외치는 과객을 극진히 맞아서 대접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흔히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손님을 맞이하다보니 사대부집의 가세는 그 집이 보유하고 있는 상의 개수로 이를 증빙했다고 한다. 양반 가문의 대명사 선교장은 700개의 상이 있었다 한다.
뷔페는 여러 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형태이지만, 소비자에게는 음식을 스스로 준비 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식사하는 이들과 대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운영자에게는 신선도가 유지된 음식을 제공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계절밥상을 기획할 때도 코스처럼 애피타이저 후 메인식사를 먹고, 그 다음 식사류(반찬과 밥)을 가져와 가족들이 함께 푸짐한 식사를 하는 것이 주콘셉트였다. 그러나 장터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는 바람에 처음 의도한 콘셉트를 완벽하게 실현하지는 못했다. 사대부집 곳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본래 기획의도를 살려 양반집의 기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양반들은 겸상하지 않고 각기 상 하나씩을 받던 우리의 전통, 철마다 나는 신선하고 다양한 지역 식재료와 그 재료로 만들어 낸 다양한 찬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차려낸 사대부집 반가의 내림 반상까지. 사대부집 곳간에서는 이처럼 사대부의 정신과 반가 여인들의 정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또한 곳간을 열어 손님을 대접하던 양반가의 잔칫상처럼 만두, 전, 튀김, 국수, 김치, 다과 등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대부의 넉넉한 인심을 담은 두리반 코너도 함께 구성했다.
옛 우리 사대부들이나 현대판 사대부들은 모두 한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배꼽인 여의도, 현대판 사대부들이 한복판 전경련 회관에서 '더 스카이팜' 그리고 '사대부집 곳간'을 통해 농업의 가치와 옛 선조로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소중한 정신, 그리고 제대로 먹는 법을 모두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