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 같다'(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 한국경제를 두고 나온 외국계 컨설팅 업체의 섬뜩한 경고다. 구조개혁 없이 미래는 없다는 점이다.
금융지주회사라고 달라보이지 않는다. 각 지주사들이 '외벌이'(은행) 의존 구조를 좀처럼 깨뜨리지 못하면서 금융지주제 도입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금융권에선 무용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금융업을 대형화하겠다는 취지가 무색케 부작용만 낳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의 한계인가
지난해 우리, 씨티, 산은 등이 지주사에서 발을 뺐다.
대기업과 달리 금융사들이 잇달아 지주사 체제를 포기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지주사를 접을 당시 씨티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지주사 자산의 97%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지주회사 체제가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며 "업무 및 의사결정의 중복을 막고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지주회사를 해체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오히려 자회사들과 갈등을 일으키기 일쑤다. 은행 의존도가 크다 보니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해 금융지주사들의 내분이 사회적인 문제가 크게 부각하자 금융권 일부에서는 '금융지주사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시각도 있다.
한 금융지주사 임원은 "일부 금융그룹의 어려움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금융지주사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익을 다각화하는 등 본연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영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지주의 영토확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아직은 차갑다. 금융지주사의 M&A 전략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은행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수익 다각화를 위해서는 대형 보험사나 증권사, 카드사 등을 인수해야 하지만, 해당 업종은 이미 과점 체제가 형성돼 M&A를 해봤자 실익이 없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금융지주사의 실효성을 높일 때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건전한 지배구조가 있을 때 성장도 가능하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고려대 한동우 교수는 '금융지주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와 지배구조 개선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금융지주회사의 CEO·이사회의장·사외이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의무는 '건전하고 효율적인 지배구조'확립이다"면서 "지배구조가 불안정하거나 단기주의에 빠진 기업의 이사회가 회사의 장기발전을 고민하고 필요한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취지인 대형화와 겸업화를 통한 글로벌 금융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금융지주의 임무와 역할,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면서 "금융지주는 콘트롤 타워로서 비전을 설정하고 실행전략을 마련한 후, 공식적인 조직과 절차를 거쳐 자회사에 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그룹이 경제적 하나의 동일체가 될 때 제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분석실장은 "금융지주회사 내 자회사들은 각각 다른 법인이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 하나의 실체로 움직여야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면서 "이러한 경제적 동일체이론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독일 등에서 상당히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EU의 복합금융그룹지침(Financial Conglomerate Directive)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어 그는 "이렇게 되면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간 또는 자회사 상호간의 자금지원이나 공동마케팅, 공동금리결정 등이 부당한 공동행위 내지 부당지원으로 간주되지 않아도 되며, 자회사간 공동상품 개발 및 판매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공정경쟁 차원에서 부당 내부거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