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배우로 일하는 순간만큼은 늘 즐거웠어요. 힘든 일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즐거웠기에 버틸 수 있었죠. '강남 1970'은 30대를 시작하는 첫 작품인 만큼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배우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고 싶어요."
연예계에서 기다림은 필수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언젠가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2005년 KBS2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이연두(30)에게도 지난 10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드라마와 뮤지컬, 연극을 통해 배우로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10년 만의 첫 영화인 '강남 1970'으로 마침내 도약의 기회를 만났다.
강남 땅의 개발이 본격화한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강남 1970'에서 이연두는 김래원이 연기한 백용기의 연인이자 용기의 두목의 정부이기도 한 여인 주소정 역을 맡았다.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용기에게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극 전개에서 작지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다. 이연두는 "남자 영화지만 희한하게 소정은 매력적이었다"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오디션을 통해 주소정과 만난 이연두는 시나리오 속 이야기는 물론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까지 상상하며 주소정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용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소정은 돈 때문에 힘들어서 술집에서 일하게 됐지만 속마음은 순수하고 착할 거라고 생각해요. 용기도 정말 많이 사랑했을 거고요." 매 등장 신마다 용기와의 애틋한 사랑을 이어간 만큼 촬영할 때는 늘 마음이 짠했다. "소정이 김밥을 싸와서 용기랑 같이 먹는 장면은 특히 애잔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렸죠."
소정과 용기의 베드신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를 가장 임팩트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통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어요. 다만 여자다 보니 촬영 전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있었죠. 그런데 현장 분위기가 편안해서 부담을 금방 덜어냈어요. 정작 촬영하는 동안에는 용기를 사랑하는 소정의 감정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거든요. 작은 손길과 눈길까지도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쉽지 않은 연기였어요."
이연두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를 세 번 봤어요. 볼 때마다 다른 것들이 보여요. 소정의 마음을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는 대사가 편집된 건 아쉽기도 했어요. 영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요. 용기의 결말을 볼 때는 소정이의 마음이 돼 많이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이연두는 '강남 1970'으로 배우로서 한 계단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고등학교 시절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뛰어든 이연두는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에 재미를 갖게 됐다. 한때는 외동딸인 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부모님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 딸을 응원해주는 지원군이 됐다. 드라마를 넘어 연극, 뮤지컬로 연기의 경험 폭을 서서히 넓혀온 그는 '강남 1970'을 시작으로 배우로서 제2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배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에너지 때문이었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도 긴 인내를 요구하는 연예계의 삶을 버티게 해줬다. 액션, 스릴러 등 거칠고 센 연기도 해보고 싶다는 이연두는 "아직까지 '날아라 슛돌이'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보다 성숙한 여배우로 진중하면서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몇 달 전에 김혜자 선생님이 나오는 연극을 봤어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 혼자 무대에서 연기를 하시는 것이 쉽지는 않을텐데 선생님이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절로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일흔이 넘어서까지 연기가 즐거울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어요. 긴 시간 동안 믿고 보는 배우가 됐으면 합니다."
사진/라운드테이블(이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