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주권을 향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됐다. 올해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혁신신약이 미국 시판 승인을 받으며 토종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연구개발은 물론 제품의 생산과 판매까지 국내 기업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신약개발의 세대 교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다.
제약·바이오업계는 그동안 축적해 온 연구개발의 노력이 오는 2025년 되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1조원 이상 판매되는 토종 신약을 만날 날이 머지 않은 셈이다.
SK바이오팜 조정우 사장이 지난해 11월26일 엑스코프리의 미국 FDA 승인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사장과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왼쪽 두번째 부터)이 지난 13일 인천시 등과 바이오산업 원부자재 국산화 및 수출산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맺었다.
◆신약개발, 우리가 주도한다
신약주권을 향한 SK그룹의 26년 노력은 결국 지난해 첫 결실을 맺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1월 자체 개발한 뇌전증 치료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이 중도 기술 수출 없이 혁신 신약으로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 신청(NDA)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한 국내 첫 신약이다. 이 신약은 내년 2분기 '엑스코프리'라는 상표를 달고 미국 시장 전역에서 판매를 시작한다.
세노바메이트의 시판 승인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역사에 많은 의미를 갖는다. 중도 기술수출 없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판매 허가 까지 직접 이뤄냈다는 것은 물론, 의약품 생산과 판매 까지 모두 SK그룹이 직접 맡기 때문이다. 원료의약품부터 완제품 까지 모두 직접 생산체제를 갖췄다. SK바이오팜의 자회사였던 CDMO 업체 SK바이오텍은 지난 2017년 BMS의 아일랜드 공장 설비를 인수한데 이어, 2018년에는 미국 회사인 AMPAC을 인수했다. AMPAC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항암제와 중추신경계, 심혈관 치료제 등에 쓰이는 원료의약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유럽과 미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SK바이오텍은 내년 까지 의약품 생산 규모를 160만 리터까지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기존 업계 1위 생산 규모를 가졌던 스위스 지그프리트 캐파가 155만 리터임을 감안하면 SK는 내년 업계 1위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판매와 마케팅도 직접 맡는다.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으로 판로를 개척하던 다른 제역사들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SK바이오팜의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는 이미 3년 전, 엑스코프리의 임상 3상 단계부터 마케팅 전략을 구축하고, 현지 의약품 유통 채널을 확보해 왔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이사는 "현지 기업과 코마케팅을 하면 수수료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이익을 반으로 나눠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이미 미국 전역의 의약품 유통 채널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직접 판매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주요 바이오시밀러 업체들 역시 원부자재 국산화를 위해 손을 잡고, 해외 직판체제를 구축하는 등 주권 확보에 나섰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포함한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은 지난 달 인천시와 손잡고 바이오산업 원부자재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해 글로벌시장에서 의약품의 직접 판매 유통망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하고, 현재 직판체제를 전세계로 확장해 가는 추세다.
◆2025년 토종 블록버스터 기대
제약·바이오업계는 한미약품을 필두로 그동안 토종 신약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성과가 올해 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신약개발의 역사는 지난 1999년 SK케미칼이 항암제 '선플라주'를 처음 개발한 이후 쌓여온 20년이 자양분이 됐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신약개발 1세대로 불리는 한미약품, 유한양행 등의 최고 결정권자들은 그동안의 노력이 2020년 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기술수출 30년, 신약 개발 20년이 되는 올해는 지나온 경험이 축적되면서 결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연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토종 글로벌 블록버스터는 오는 2025년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상무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협업이나 기술이전 없이 국내 주요 제약사들과 국내 바이오벤처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신약을 제품화 하고, 해외에서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시기는 2025년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국내 제약사 이름을 단 글로벌 블록버스터도 탄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약주권만을 고집할 것일 아니라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단계별 전략을 세워야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는 신약개발이 추구해야하는 방향인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부분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이 십수년의 기간과 수조원이 투입되는 신약개발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글로벌 마케팅 까지 모두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제약사 가운데 글로벌 50대 기업에 포함되는 빅파마는 없는 실정이다. .
정 대표는 "전 세계 판매망을 갖추는 것은 글로벌 20~30위권에 들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우선 전략적 제휴와 협업, 기술수출 등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매출 3조5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50대 기업으로 진입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전방위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 신약주권도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 대표는 "일본 제약기업들은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하기 까지 꾸준한 기술수출을 통해 확실한 수익원을 확보하고, 직판에 나서기 까지 단계별로 현지화 과정을 거쳐왔다"며 "암젠이나 로슈와 같은 다국적 기업 역시 꾸준한 라이센스 아웃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은 주권을 내세우기보다 전략적 협업에 나서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