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삼왕'서 미래 먹거리 식품 유통업 뛰어들어
하노이, 호치민, 다낭에 대형 물류센터…매장도 확장
직수입해 가격 경쟁력 갖춰, 전체의 60~70% '한국産'
온라인 주문→매장 배송→고객 매장 픽업 'O2O' 시도
K-마켓을 운영하는 K&K GLOBAL TRADING 고상구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 본사에서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 김승호 기자
【하노이(베트남)=김승호 기자】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가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40여 분 가량 달리면 닿는 후엔츄옹마이. 이곳엔 지난 6월 말 준공한 K-MARKET(K-마켓) 복합물류센터가 있다. K-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K&K GLOBAL TRADING 본사도 여기에 있다. 현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일등이 아닌 일류기업(Not a Top Company, But a Leading Company)'이라고 쓴 글귀다.
한 때 '베트남의 인삼왕'으로 불리던 K&K 글로벌 트레이딩 고상구 회장(사진). 그는 지금 하노이, 호치민, 다낭 등 베트남 주요 도시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붙은 한류 먹거리를 판매하는 마트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인물이다. 올해 말께면 K-마켓은 베트남 전역에서 '100호 매장'을 돌파할 예정이다. 이쯤되면 베트남에서 '인삼왕'을 넘어 '유통왕'도 노려봄직하다.
하지만 고 회장의 목표는 '일등'이 아니다. 롯데마트, 이마트, 아마존, 알리바바, 이온몰 등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유통 강국의 브랜드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몰려와 온·오프라인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작은 매장 하나로 시작한 K-마켓이 일등을 넘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목표한 것은 일등이 아닌 '일류'다.
"거대 유통브랜드들이 판을 치고 있는 베트남에서 우리는 틈새를 노려 우리만의 전략으로 승부해나갈 것이다. 우리의 경쟁자는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도, 매장이 넓은 대형마트도 아니다. 우리만의 색깔을 갖고 편의점에서 대형마트로 가는 길목을 차단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후엔츄옹마이 본사에서 만난 고상구 회장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K-마켓이 취급하고 있는 제품수는 1만3000여 가지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한국산 비중은 60~70%정도다. 한국산 제품은 K-마켓이 직접 수입한다. 직수입을 하다보니 500mℓ 삼다수 1병이 현지 K-마켓에서 우리돈 약 500원에 팔릴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
특히 편의점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과일, 채소, 육류 등 신선식품도 대부분을 취급한다. 완벽한 콜드체인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물류창고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첨단시스템을 갖춘 K-마켓의 물류창고는 하노이를 비롯해 호치민과 다낭에도 위치해있다.
매장 면적도 주변 상권에 따라 30평에서 500평 정도로 다양하다. 편의점 고객들은 무조건 가까운 곳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K-마켓에선 편의점엔 없는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데다 규모도 커 고객 흡입력이 뛰어나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인들뿐 아니라 현지 고급 수요층이 K-마켓을 자주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편의점과 대형마트 사이에서 길목을 차단해 고객을 유인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고상구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 본사에 있는 'K-MARKET' 매장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승호 기자
유통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고 회장이 고안한 K-마켓의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전략도 눈여겨 볼 만하다.
"베트남은 돈을 먼저 받고 물건을 건네주는 COD(cash on demand) 방식이 대부분이다. 신용카드 등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고객은 온라인 K-마켓에서 물건을 주문한다. 자체 배송시스템을 통해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고객이 지정한 K-마켓 매장에 배송한다. 고객은 매장문을 닫기전까지 방문해 직접 주문한 물건을 찾아가면 된다."
그가 설명하는 K-마켓의 온라인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유통회사는 물류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고객은 온라인을 통해 매장보다 더 많은 물건을 고를 수 있다. 매장이 중간 물류센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품 분실 우려도 없다. 4000만~5000만대에 달할 정도로 전국민이 오토바이를 애용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고객이 직접 픽업해가는 것도 힘든 일이 아니다.
"당일 배송, 총알 배송, 새벽 배송 등의 서비스가 경쟁하는 한국에선 유통회사들이 물류에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망하고 만다. 온라인은 무점포이기 때문에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 장점인데 오히려 배송비용이 높아 고객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K-마켓이 베트남에서 이런 투자를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살려 우리만의 O2O서비스를 할 것이다. 주문한 고객은 원하는 시간에 마트에 들러 찾아가면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멀리 있는 고객 1명을 위해 물류에 투자할 수는 없다. 전자상거래가 대세이지만 이 늪에 빠지면 유통기업은 살아나지 못한다."
고 회장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욕심내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일만 차근차근하겠다는 그의 철학도 엿보인다. 베트남에 처음 진출해 백화점 유통사업을 하다 쓴 맛을 봤고, 마트가 잘 돼 한창 성장할 시기였던 2014년 초엔 물류창고 화재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됐던 경험을 했던 그였다.
K-마켓의 장래성을 엿보고 곳곳에서 투자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물리쳤던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이었다.
"100개 매장을 관리할 수준 밖에 안되는 회사가 투자금을 받았다고 매장을 200개, 300개로 늘리면 안된다. 직원들도 따라가지 못한다. 욕심낸다고 오래갈 수 있겠느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만 할 것이다."
그러면서 고 회장은 늘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We are one(우리는 하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K-마켓은 2017년 9월 당시 '베트남 100대 브랜드'에 뽑혔다. 지난 6월에는 '베트남 100대 고객 신뢰 브랜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 회장은 또 이달 초엔 한국 중소기업들의 해외진출 자문을 위해 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아세안 대표 및 베트남 민간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K-마켓 직원들이 하노이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한국산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