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0년간 논란이 됐던 키코사태가 다시 심판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법정이 아닌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다. 금감원은 내달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들의 자료와 면담을 바탕으로 분조위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결과에 따라 은행과 피해기업간의 희비가 갈릴 수 있어 막판까지 신경전이 계속될 모양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내달 9일이나 16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키코사태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해 윤석헌 금감원장이 키코 재조사를 추진한 지 1년 만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능한 많은 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추가의견을 듣는 등 신중히 검토하기위해 미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는 환율하락으로 수출기업이 손실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해 마련한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안정적일 땐 환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환율이 일정범위를 벗어나면 손해를 보게 된다.
지난 2008년 키코에 가입한 수출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금감원이 2010년 조사한 피해 실태에 따르면 중소기업 738곳이 3조2274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중소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법원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일부 사건에선 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은행 쪽에 불완전판매에 대해서 일부 배상 책임을 물었다.
◆피해 기업 "불완전 판매 가능성 충분… 배상비율 늘려야"
금감원은 은행의 불완전 판매여부에 집중하고 있다. 법원 판례를 통해 상품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금융기관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은행이 키코 상품을 판매하면서 환율변동이나 콜옵션 풋옵션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익을 세부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판단 한 셈이다.
피해기업들도 키코 상품의 불완전판매에 대해 동의한다. 이성민 엠텍비젼(피해기업) 대표는 "환헤지상품은 통상 수출 기업이 환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보험식으로 가입하는 상품"이지만 "키코는 반대로 은행이 기업에게 환리스크를 떠넘기는 식으로 상품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키코는 부분환헤지라는 이름으로 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일정 구간(보통 20-40원구간)만 보호하고 그보다 환율차가 커지면 기업이 2배로 보상케 하거나 기준이상을 넘어서면 계약해지를 했다"며 "이런 위험한 상품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키코 상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피해 키코공대위 관계자는 "키코 사태로 인해 대다수 수출 중소기업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거나, 회생조차도 할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겪어왔다"며 "피해기업들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비율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키코 분쟁조정대상 기업 손실액 현황/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 은행 "배상비율에 따라 대응 달라질 것"
그러나 은행들은 분조위 결정을 앞두고 신중한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과 손해배상 시효도 지났지만, 결과만을 두고 피해보상을 하게 되면 주주에 대한 배임행위가 될 수 있고, 4개 기업에 피해보상이 또 다른 판례로 작용해 키코 기업에 대한 배상범위가 넓어질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해당기업의 피해보상만 하기엔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문제"라며 "결국 피해보상을 하게 되면 불완전판매를 한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해당은행이 손실의 20~30%를 배상하는 권고안이 유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키코 불완전 판매에 대한 23건의 판결의 배상비율 평균이 20~30%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분조위 결과는 전체 피해금액을 두고 20~30%를 배상하는 방안과 은행별로 배상비율을 달리하는 달리하는 방법 등으로 나뉠 수 있어 은행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배상금액에 따라 은행별 대응도 달라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에 나선 기업은 일성하이스코·재영솔루텍·남화통상·원글로벌 4곳이다. 이들의 손실액 규모는 총 1688억원 규모로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 시티은행, 대구은행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