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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불안 탈출?!

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장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과 같이 살아갈 운명임을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알았던 것 같다.

어딘가 읽은 글에서 불안의 대가인 키에르케고르는 좋은 아버지를 만나 평생 놀고먹으면서 철학을 논했다고 한다. 그런데 맘 편하게는 살지 못한 듯하다. 항상 자신이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살았다하는데 실제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남긴 재산의 마지막 은행 잔고가 떨어졌을 때 사망했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그럴까 하지만 더 심한 경우를 임상 장면에서는 많이 보기도 한다. 불안감 때문에 아예 밖을 안 나가거나 파산을 걱정해서 자린고비는 저리 가라는 수준의 행동을 한다. 몇 백억의 돈을 모아 놓고도 말이다. 인간이란 이런 면에서는 모순을 모아놓고 조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오로지 인간만이 불안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양이에 의해 궁지에 몰린 개나, 뱀에 화들짝 놀라는 원숭이가 보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쥐가 불안하고 공포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쥐와 원숭이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공포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주장이다. 동물들이 아무리 우리 인간이 느끼는 경험을 하는 듯 보여도 실제 그것이 인간이 경험하는 것과 동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만일, 궁지에 몰리 쥐나 뭔가 불안해 보이는 개가 그런 감정을 느끼려면 '제가 지금 불안합니다'라고 말해야만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불안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불안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조지프 루드라는 신경학자는 인간의 불안을 4가지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가 실제 존재하는 위협이나 임박한 외부 위협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불안, 두 번째가 신체적 감각을 알아채고 그것이 자신의 심리 혹은 물리적인 위협으로 걱정할 때 생기는 불안, 세 번째가 생각이나 기억이 물리적 혹은 심리적 안정을 위협할 때 나타나는 불안이다. 마지막은 생각과 기억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위협하는 죽음과 같은 것을 인식할 때 느끼는 실존적인 불안이다.

아마 앞의 2개의 불안은 사실 생존에는 필연적이면서 타당한 불안이고 이로 인해 우리를 생존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긍정적인(?)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은 이러한 경험 이후에 가지는 불안에 있다. 우리 뇌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거창한 이유에 답을 찾기 전에 살아남기를 선택했기 때문에-또 그래서 나의 조상도 이런 뇌의 영특함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태어나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위협임에도 죽기 전까지 항상 그러한 위협이 다시 있을 것임을 일깨우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공포에 휩싸인 상태로 지내는 것을 뭔지도 모르게 삶을 즐기고 무모하게 도전하게 하는 것보다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 방식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생존은 삶의 질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불안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도움 되는 방법들이 있지만 그 중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요령을 하나 말해보겠다.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안한 감정과 생각이 밀려 올 때 이를 맞서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냥 흘려보내면서 오로지 지금에 머무는 것이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관조'라고도 하고 이를 하는 전체 방법을 '명상'이라고도 했다.

독자들 중에는 이 설명에 분노감을 느끼고 본질적인 대책을 알려주지는 않고 말장난을 한다고 필자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결책이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해결책을 못 찾는 불안은 이미 그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 있는 영역의 것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에 가장 현명한 대처는 그냥 불안을 두고 주의를 주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도, 자꾸 불안이 나에게 해결책을 달라고 말을 건넨다고 느낀다면 필자도 사용하는 위의 방법을 진정 써보기 바란다. 불안이 우리에게 짖는 이유는 마치 답을 요구하는 듯 보이나 그냥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다. 아무 의미 없다.

그래서 티베트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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