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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증권일반

동전의 양면, 유가하락 韓경제에 독일까 약일까



유가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해외 유전 개발에 열을 올리던 미국의 주요 석유회사는 세일오일의 경쟁력이 높아지자 자국의 유전으로 시선을 돌려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이란 원유제재 부활 여파로 원유시장 고객들이 사우디로부터 주문량을 늘리면서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이번 달 하루 1100만 배럴에 가까운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사실상 최후 저지선이 무너졌다.

고유가 시대 때 물가 급등과 소비 위축을 겪었던 과거를 기억한다면 유가 하락이 경제에 청신호가 될 수 있지만 유가 급락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지정학적 리스크 등 위협 요인도 적지 않다. 특히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이 겹쳤기 때문에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대두된다.

◆ 수입 가격 하락, 소득주도 성장에 힘 보탤까

"바라건대(Hopefully), 사우디와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유가는 공급을 기반으로 훨씬 더 낮아져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2일 사우디의 감산 시사에 트위터를 통해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지지 발언은 다음달 6일 OPEC의 공급량 조절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를 비롯한 제휴 산유국들은 이번 회동에서 현재의 공급정책 기조를 바꿔 내년에 감산을 할 지를 결정한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54.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을 국내 경제와 주식시장 활성화의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기업 생산활동의 원자재 역할을 하는 원유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단가를 낮추고 수익성을 개선시킬 수 있어서다.

예상대로라면 성장 둔화 우려는 다소 수그러들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9년 한국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 상승은 소비, 투자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내년 국내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96%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던 2011년~2014년 코스피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률은 7.5%에서 5.1%로 하락한 바 있다. 80달러를 웃돈던 국제유가 하락이 반가운 이유다.

장기적으로 부의 중심이 산유국에서 소비국으로 이동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증권가 한 전문가는 "에너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유로존 국가와 한국 일본 중국 등 제조업 수출국들은 에너지 수입 가격 하락으로 실질 소득 개선 효과가 높을 것"이라며 "상장사 대다수가 제조업체인 국내 증시의 상승 동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0년대 말 처럼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큰 축복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의 유가하락이 공급적인 측면보다는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 김희진 연구원은 "내년 세계경제 둔화로 수요 약화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 반등은 기술적 수준에 그칠 것이다"면서 "경기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유가는 수요견인 약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유가 하락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올까

가장 큰 걱정은 '나비 효과'다. 중동, 러시아와 같은 주요 산유국들이 유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에 빠질 경우 글로벌 경기 불안의 진폭을 키우는 '나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기쁜 소식이 아니다. 지난 3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1.7%포인트였다. 순수출이 지난 2분기와 같았다고 가정하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1%라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소비자물가가 2.0%까지 오른 상황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하락이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11월 초 공개된 통계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이 기간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 2%'는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다.

시장에서는 이른바 나쁜 인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이달 초 '2019년 한국경제 대전망'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동반한 물가 상승), 중기적으로 고실업,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복지, 재정 건전성의 트릴레마(trilemma·동시에 세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한 것은 국내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 측면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쇼크가 발생하면서 실질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환경만 놓고 봐도 '나쁜 인플레이션'에 무게가 실린다. G2(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성장률 하락, 실업률, 소비 침체 등이 복합적이어서다. 최악의 경우 디플레이션이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수석연구위원과 강중구 연구위원은 '글로벌 리플레이션 현상 진단' 보고서에서 "세계교역 위축과 보호주의 압력으로 생산기반이 해외로 계속 나갈 경우 국내 생산기반이 약해지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제의 비효율성을 제거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내수시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성장 활력을 높임으로써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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