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균 변호사가 21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열린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대한 심포지엄'에서 '공익소송 등과 소송비용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발표하고 있다./이범종 기자
#. 염전 노예사건으로 알려진 피해 장애인들은 2015년 11월 국가와 신안군, 완도군에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후 신안군청이 지출한 변호사수임료 등 약 697만2000원을 7명의 피해자가 납부해야 하는 결정이 났다. 피해자의 절반은 소송비용 부담을 이유로 항소를 포기했다.
공익 소송 패소가 상대방 변호사비용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호균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는 21일 대한변협에서 열린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공익 소송은 승패와 무관하게 문제제기 자체로 악습이나 제도에 대해 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패소했다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경제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소송비용 제도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비용은 재판 비용과 당사자 비용으로 나뉜다. 재판 비용은 당사자가 국고에 납입하는 비용으로, 재판 수수료인 인지대와 재판을 위한 각종 비용이다. 당사자 비용은 소송 서류 작성료와 변호사 보수 등이다.
우리나라는 30년 이상 일본과 미국처럼 변호사 보수 각자 부담원칙을 이어오다,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패소자 부담 원칙으로 바꾸었다. 이를 두고 '소송 남발의 폐해를 방지하고 변호사 강제주의를 위한 초석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공익 소송이나 의료 소송 등 전문가 감정과 입증 부담이 큰 소송을 제기해 패소하면, 2차적 경제적 피해를 낳게 된다. 박 변호사는 "일반 국민들의 재판 청구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거나 침해하는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한다"며 "소송 남발을 막는다는 목적에서 나아가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의 소송 자체를 봉쇄하는 폐해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패소자 부담원칙으로 제도를 바꿀 때는 일반 국민과 시민단체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군사정부 시대 아니었느냐"고 꼬집었다.
패소자부담원칙은 승소할 경우 이익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화해나 조정 없이 매년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반면 변호사 보수 각자부담을 적용하는 미국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소송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엿볼 수 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당사자가 소송을 방어하거나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되며, 그 처벌이 상대방 변호사 비용을 포함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소를 제기하는 것을 부당하게 억제 당하게 된다'고 판시했다.
각자부담 원칙을 적용하면 당사자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자신의 법률비용을 패소자에게 받아낼 수 없으므로, 사소한 소송의 증가를 막고 화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 역시 패소자 부담주의를 인정하는 연방법과 주법이 있다. 대체로 인권·소비자보호·고용관계·환경보호 소송 등이 해당한다. 다만 이 경우 미국은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따른다.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는 원고가 승소한 경우, 패소자에게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의 변호사비용을 물어 줄 필요가 없다. 박 변호사는 편면적 패소주의는 ▲승소한 당사자에게 변호사비용을 포함한 완전한 손해를 배상을 받도록 하고 ▲공익적 소송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패소자의 불법행위를 처벌하거나 억제하고 ▲패소자가 부당하게 응소해 다투는 일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현행 패소자 부담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공익소송이나 입증 부담이 있는 전문가 소송, 인권 관련 소송 등에서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원고가 승소한 경우 패소자에게 변호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자"며 "반면 이 경우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의 변호사비용을 물어 줄 필요가 없는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