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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물류/항공

[르포]'없는 것 빼고 있을 것 다 있는' 8600TEU급 현대커리지호와 함께 한 3박4일

[b]1인용 침실, 휴게실, 체력단력장, 노래방, 엘리베이터등 갖춰[/b]

[b]길이 약 340m, 너비 46m…갑판 넓이만 축구장 1개 반 크기[/b]

[b]9만8천마력 엔진, 발전기 4대, 구명벌·구명정등 안전장비도[/b]

현대커리지호가 중국 상하이항을 출발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배가 밤에 출항할 때는 가시거리 확보를 위해 조종실인 브리지의 불을 끈다. /김승호 기자



【상하이(중국)·광양(한국)=김승호 기자】IMO(국제해사기구) 넘버 9347542, 콜사인 V7PP4. 현대상선의 86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현대커리지호'가 지난 15일 밤 중국 상하이항을 우여곡절끝에 출발, 한국으로 향했다.

현대커리지호는 당초 상하이에선 24시간 정도 머물며 한국과 미국으로 운반할 컨테이너를 선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적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인 상하이항에 배를 대고(접안) 나오기(이안)는 녹록치 않았다.

중국·미국이 무역전쟁을 하면서 내년 1월 관세 인상 직전에 미국으로 수출하려는 중국산 화물이 대거 몰려 항만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출발 즈음엔 날씨까지 악화됐다.

결국 배가 항만을 오갈 때 길을 안내하는 중국인 도선사가 배에서 하루 묵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현대커리지호가 정박한 상하이 내항의 경우 도선사는 장강과 황해가 맞닿는 곳까지 약 5시간을 운항한 뒤 내리게된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고 파도까지 높아지면서 도선사가 하선할 수 없어 연안에서 무게만 15톤(t)에 달하는 닻(앵커)을 내리고 1박을 더 보낸 것이다.

상하이에서 한국 광양과 부산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미국 LA의 롱비치까지 가야하는 운항 스케줄이 초반부터 꼬인 셈이다.

서민수 선장을 포함해 10명의 한국인 승무원, 11명의 필리핀 승무원들이 출발을 위해 최선의 준비를 다 했지만 불가피하게 지연 출발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통상 배의 하루는 비행기 한 시간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비행기 한 시간 연착은 배 스케줄이 하루 늦춰지는 것과 같다. 또 비행기로 한 시간 갈 거리는 배의 하루 정도 운항거리와 비슷하다.

기자는 지난 15일 목요일부터 18일 일요일까지 3박4일간 현대커리지호의 중국 상하이항~광양항 여정을 함께했다. 물론 배에서 이틀을 묵기로했던 일정도 사흘로 늘어났다.

현대커리지호가 지난 15일 밤 중국 상하이항을 벗어나고 있다./김승호 기자



◆시간이 생명, 연료를 아껴라

"파일럿(도선사)을 태운 채 배가 하루를 정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날씨가 악화돼 안전 문제 때문에 파일럿이 내리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중국측에서 할 수 있는)해결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해하기 어렵다.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속력을 좀더 내야하는 상황이다."

배가 황해로 접어들면서 잠시 여유가 생긴 현대커리지호의 서민수 선장이 입을 열었다.

스케줄 지연은 먼 항로를 운항해야하는 컨테이너선에겐 경제성과 직결된다.

20피트 컨테이너를 최대 8600개까지 싣을 수 있는 현대커리지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LA까지 이동하는데만 약 1500t의 벙커C유가 필요하다. t당 가격을 500달러로 가정했을 경우 7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억5000만원에 육박하는 연료비가 편도행에 드는 셈이다. 이번에 상하이를 출발한 현대커리지호는 이달 30일께 LA를 찍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온다. 왕복 연료비만 총 17억원 가량이다.

제때 도착하는 것이 생명인 정기화물선이 하루가 늦춰지면 수천만원의 연료비가 추가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정박해서도 각종 장비를 돌려야 하고, 운항중엔 평소보다 속도를 높여야 해 더 많은 연료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앞뒤 길이만 약 340m, 너비가 46m인 현대커리지호의 갑판엔 축구장 1개 반이 들어갈 정도로 넓다. 컨테이너는 총 16층까지 쌓을 수 있다. 이는 아파트 12층 높이와 맞먹는다. 통상 컨테이너선은 최대 적재량의 85% 가량을 싣고 운항한다. 적재된 컨테이너를 일렬로 세우면 약 52㎞로 이는 서울에서 경기 안성까지의 거리다.

황해로 접어든 배는 북동쪽을 향해 항해를 본격 시작했다. 상하이는 우리의 제주도보다 남쪽에 위치해있어 제주도 남단을 거쳐 광양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 사이 바다는 현대커리지호의 큰 스크류가 남겨놓은 포말만이 수평선 근처까지 보일 정도로 잔잔해졌다.

에피소드가 많았던 출발에 비해 운항은 순조로웠다. 파도는 높지 않았고, 간혹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현대상선은 8600TEU급 컨테이너선을 4대 보유하고 있다. 배 이름은 기자가 탄 Courage(용기)부터 Brave(용감한), Faith(믿음), Force(힘)로 각각 붙였다

현대상선에선 이들 이름을 '마음가짐 시리즈'로 부르고 있다.

현대커리지호는 9만8000마력의 엔진을 갖추고 있다. 엔진만 아파트 3층 높이다. /김승호 기자



◆'물밑작업'하며 음지에서 일하는 기관실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해 2008년부터 운항을 시작, 올해로 열살이 갓넘은 현대커리지호에는 9만8000마력의 엔진이 탑재돼있다. 동력을 측정하는 단위인 마력은 통상 말 한 마리가 낼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이 배의 엔진은 말 9만8000마리의 힘을 모두 합한 것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이해하면 쉽다.

김성진 기관장은 "현대커리지호가 낼 수 있는 최대속도는 27~28노트로 이는 군함과 비슷한 빠르기다. 짐을 가득 채우고도 25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을 정도로 건조 당시 화제가 됐던 선박"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컨테이너선으로 쓸 수 있는 연한의 절반이 넘었고 연료를 절감하기 위해 경제속도인 18~20노트로 항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테이너선의 수명은 15~20년이 일반적이다. 운항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가 된 현대커리지호의 경우 중년을 넘긴 셈이다.

배의 뒷편에 위치한 기관실에서 지켜본 아파트 3층 높이의 엔진이 뿜어내는 위용은 엄청나다. 운항하기 위해 엔진이 본격적으로 돌자 귀마개를 해야 그나마 소리를 견딜 수 있을 정도다.

이 배에는 또 1개에 3300㎾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가 양쪽에 2대씩 총 4대가 있다. 발전기 1대로 기차 하나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다. 발전기는 배가 정박중이거나 운항시 각종 전자장치를 돌리고, 냉동 컨테이너에 공급하고, 냉·난방과 전등 등 장시간 항해에 쓰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쓴다. 심지어 현대커리지호엔 가장 아래에 위치한 기관실과 가장 위에 있는 조종실(브리지)등 총 9개층을 오가는 6인용 엘리베이터까지 있어 승무원들의 이동을 돕는다.

퇴선 등 비상용으로 쓰이는 구명정. 구명정은 탑재돼 있는 엔진을 이용해 최대 40㎞를 이동할 수 있다. 구명정엔 비상식량, 식수, 소화기 등도 있다. /김승호 기자



◆뭐니뭐니해도 '안전 제일'

거친 파도를 헤치고 매번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 숙명인 상선은 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거대한 '철 덩어리'인 배에선 살짝 부딪히기만해도 골절이 일어날 수 있다. 선실이 아닌 갑판 이동시에 안전모와 발끝에 보호장치가 있는 안전화는 필수다.

운항 중 거대한 파도를 만나거나 다른 선박과의 충돌 위험, 예기치 못한 태풍 등의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항구에 들러 컨테이너를 내리고, 올리는 시간을 빼면 엔진은 24시간 돌려야 한다. 정박중이라도 일상 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발전기도 쉴틈이 없다. 이 때문에 화재 위험도 적지 않다.

선실이나 갑판, 기관실, 브리지(선교) 등 곳곳에 소화기는 물론이고 유사시에 배를 버리고 비상탈출 할 수 있는 각종 장비도 골고루 갖추고 있다.

현대커리지호의 곳곳을 안내해준 정의리 일항사는 "이 배에는 36명이 탈 수 있는 구명정 2개와 20인승 구명벌 4개, 6인승 구명벌 2개가 비치돼 있어 퇴선 등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다"면서 "특히 엔진까지 장착돼 있는 구명정엔 비상식량과 식수, 소화기, 신호탄과 심지어 낚시도구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 작은 잠수함을 연상케하는 구명정은 최대 40㎞를 갈 수 있다.

현대커리지호 (왼쪽부터)최형도 일기사, 김성진 기관장, 정의리 일항사, 서민수 선장이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광양으로 향하는 브리지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승호 기자



현대커리지호에 설치돼 있는 구명정, 구명벌 등 탈출장비만해도 21명의 승무원이 유사시 이용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배의 후미엔 CO2룸이 별도로 위치해있다. 장비가 많은 기관실이나 엔진룸 등에 불이 날 경우 CO2룸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분출하면 기계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번 승선하면 6~8개월 가량 머물러야하는 배엔 없는 것 빼고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 서너평 크기의 1인실 숙소에는 침대와 옷장, 책상, 소파를 비롯해 샤워시설을 갖춘 화장실도 별도로 있다. 휴게실 책장엔 만화책, 소설책 등 각종 책들로 채워져있다. 탁구장과 헬스장, 노래방 등도 눈에 띈다. 세탁실은 물론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분해놓은 식당 메뉴도 다양하다. 기자가 현대커리지호에서 묵은 3박4일 동안엔 월남쌈, 치킨, 삽겹살, 오징어볶음, 잔치국수, 미역국, 사골국, 재첩국 등이 나와 입을 즐겁게했다.

중국 상하이~한국 광양~부산~미국 타코마~LA 롱비치로 이어지는 현대커리지호의 항로. 왕복에 총 40여 일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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