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들에게 소감을 전하고 있다./배한님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13년 8개월만에 원고 측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은 한일 관계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고(故)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現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케 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1941년~1943년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여씨와 고(故) 신천수 씨가 낸 손해배상청구를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패소 확정하며 시작됐다.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오사카 지방재판소 판단을 따른 것이다.
이후 여씨 등 4명이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지만 1·2심 모두 일본의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패소 판결했다.
일본에서 소송하지 않은 이춘식(94)씨와 고(故) 김규수 씨에 대해서도, 신일본제철과 구 일본제철은 법인격이 달라 채무도 승계하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대법원은 2012년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주금의 법적 동일성을 인정하고 파기환송했다. 이듬해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신일본제철의 채무를 인정하고 위자료 액수를 각 1억원으로 결정했다. 신일철주금은 불복해 상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해배상을 부정한 일본 판결은 국내에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원심의 판단은 관련 법리에 비춰 모두 타당하다"고 봤다.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에 따랐으므로 우리 헌법 가치에 반한다는 취지다.
또한 신일철주금이 가해 기업인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동일하므로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신일철주금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대해서는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권리남용"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주장 역시,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춘식 씨는 이날 법정에 도착해 다른 원고들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이씨는 선고 직후 "오늘 혼자 오니까 슬프고 눈물이 난다"고 심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