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최종수정 : 2017-09-17 13:11:27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지낸 김선정 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자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소위 재벌가 출신의 인사이다. 미술계 일부에선 귀가 닳게 '화려한 네트워크', '국내 최고 아트파워' 등의 수식어로 치켜세우는 공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재)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회는 광주문화예술계와의 연관성, 폭 넓은 네트워크, 전문성, 경영능력 등을 선임 배경으로 꼽았다. 명실 공히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국제행사의 전권을 쥔 셈이다.

흥미롭게도 김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례없는 논란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 첫 번째는 김 대표의 '연봉 포기' 소식이었다. 10년 이상 국고를 지원받은 행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국제행사일몰제'에 광주비엔날레가 포함되어 예산이 삭감되자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시(市)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연봉은 1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분명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봉 포기 소식을 접한 미술계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필자 역시 긍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산부족이 문제라면 방만한 부분을 정리하고 내실을 기하는 게 옳지, 새로운 형태의 '재능기부'는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급여를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었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취약한 미술계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했다면 아름다웠을 미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감동적인 희생'은 다소 신파적으로 변질됐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대화에서 김 대표를 가리켜 "실력은 물론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개런티까지 포기하는 인성을 갖춘 인사"라며 한껏 칭찬했다. 김 대표가 연봉 포기를 제안하더라도 적극 반려해야할 사람이 되레 인성 운운하며 정책적 자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연봉을 포기하지 않는,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성은 대체 어떤 인성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학습효과를 남긴 김 대표의 연봉 포기에 이어 최근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또 하나의 이슈를 제공했다. 바로 재단 대표이사인 김 대표에게 사실상의 예술총감독까지 맡겼다는 사실이다.

(재)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1일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하고 민주·인권·평화의 거점으로서의 광주를 재조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기본 구상안'을 발표했다. 사상 처음으로 재단 대표이사가 총괄 큐레이터를 겸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비엔날레 역사상 경영 수반인 재단 대표가 사실상의 실무 책임자인 예술총감독까지 겸한 사례는 없다. 일본 후쿠오카 트리엔날레처럼 학예실에서 관장하는 국제행사는 있어도 견제 부실과 권력집중을 우려해 일개 개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진 않는다.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카셀 도쿠멘타의 대표이사 아네트 쿨렌캄프(Annette Kulenkampff)는 얼마 전 대표이사의 역할에 대해 묻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대표이사는)도쿠멘타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한 모든 조율에 관여한다고 보면 된다. 단, 예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예술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경영과 전시, 디렉터와 큐레이터 등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며 분리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발전 동력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김 대표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은 물론 전시기획의 권한까지 모두 넘겼다.

광주비엔날레는 개인의 것도, 재단의 것도 아니다. 광주만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이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수백억의 세금만 해도 그렇고, 한국이 낳고 기른 아시아 최초·최고의 비엔날레라며 상찬해마지 않았던 기록과 역사만 봐도 그렇다. 행여나 광주비엔날레가 온전히 자신들 것이라는 오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광주비엔날레는 거꾸로 가는 듯한 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광주'라는 지역성에 함몰되는 듯한 설정도 그렇고, 특정인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것도 그렇다. 설사 개인과 장소가 매우 특출하거나 특정적이라도 개인과 지역은 단지 발화의 동기이자 에너지이지 전부가 아님을 망각하고 있다. 결은 다르지만 내년도 비엔날레 주제로 경계와 지정을 넘나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철지난 화두를 꺼내든 것 또한 역류의 증거다.

댓글 쓰기 (전체 댓글 수 0)
많이 본 뉴스
핫포토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