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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한나절의 얼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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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찜통더위에 묻어난 땀이 한나절 내내 잘박거리며 기분을 엉클어놓는다. 번잡한 일상의 무게를 견뎌내려면 이런저런 매듭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삶의 법칙쯤은 잘 알면서도, 그깟 땀 몇 방울에 죽 끓듯 하는 변덕이 왠지 궁상맞다. 다행히 마음 끝자락이 생각을 곧추 잡는다. 무람없이 불쑥 튀어나온 그런 푸념을 다독거리며 밀어 넣는 걸 보니 조금은 기특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를 걷는데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판소리 한 가락이 엉클어진 매듭을 산뜻하게 풀어놓는다.

얼씨구! 북을 치며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의 추임새다. 그 실마리를 뽑아내는 곳이 어딘가? 하고 소리를 따라가니 생선 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다. 추임새를 듣는 순간, 오래전 접어뒀던 기억이 불을 밝힌다. 무대는 시골의 어느 허름한 중고 음반가게. 안을 들여다보았을 땐 장면은 갈등으로 치닫고 있었다. 전축 턴테이블 위에 얹혀 돌아가는 빛바랜 음반에선 소리꾼이 목청을 돋웠고, 백발의 주인과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청년이 흥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가게 안 풍경은 드라마틱했다. 고목처럼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 랩과 힙합에 열광할 것 같은 앳된 청년, 소리꾼의 애잔한 판소리! 이 보기 드문 조합이 앙상블을 이룬 스케치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흥정을 부추기는 건 추임새였다. 주인은 그 판소리를 꿰차고 있는 것 같았다. 가락을 절묘하게 잘 탔다. 주인이 가격을 내지를 때마다 음반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씨구! 화답했다. 흥정이 끝날 즈음 추임새는 절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얼쑤! 좋다! 그렇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이렇듯 추임새는 '한나절의 얼쑤!' 드라마를 극적으로 몰고 간 음향효과였다. 흥미진진했다. 흥정에 곱살끼어 분위기를 띄운 건 기본이고, 주인이 청년의 눈치를 살피며 연신 주판알을 튕길 때마다 추임새를 넣어 흥정을 도왔다. 고개를 가로젓는 청년의 마음을 되돌려놓은 것도 추임새다. 간간이 뜨악해지는 침묵의 공간을 메워주고, 서먹함을 화기애애하게 녹여주고, 그래서 엇박자로 가던 흥정에 접점을 이끌어낸 게 추임새였던 거다.

우리네 소리꾼들은 일찍이 추임새의 에너지를 간파하고 있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중구난방을 하나로 모았다. 전통 놀이마당에서 소리꾼과 관객이 신명나게 한데 어우러지는 까닭일 것이다. 이는 우리 가슴 밑바닥에 '흥'이라는 추임새 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조금만 격려해줘도 흥이 일렁거리는 우리네 국민성이다. 스포츠에도 그 고부가가치가 빛을 발했다. 월드컵경기 응원전 때마다 너나없이 하나가 되는 에너지가 물결쳤다.

이런 우리 내면의 가락을 추억의 서랍 속에 보관했다가 한마당 잔치나 스포츠 이벤트 때만 끄집어내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상의 뜰에 초대해 마음껏 뛰놀게 해야 한다. 얼쑤! 좋다! 그렇지! 하면서 서로 추켜 주고 격려해야 한다. 저 혼자 짊어진 삶의 무게와 부피를 버텨내기에도 버거워 그런 여력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조금은 덜 한 쪽에서 위로의 추임새를 건네는 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위로가 꽃피는 동산에는 아귀다툼이 기웃거리지 않는다.

얼쑤! 추임새의 에너지는 역설적이게도 상대의 말을 잘 듣는 데서 나온다. 추임새는 태생적으로 장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리꾼의 가락에 귀 기울여야 하니 그럴 것이다. 그 정성에는 배려의 마음이 꿈틀거린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사이사이 스며들게 해 상처를 치유해주는 모습이다. 그 추임새에 감동해 희망과 용기를 얻고 눈물 흘리는 광경이 이따금 목도된다. 한나절 건넨 추임새를 저울에 달아보면 무게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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