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7차 공판이 끝난 지난 7월 8일 오전 2시 40분경 서울중앙지법 대부분의 사무실이 소등됐다. /오세성 기자
"특검, 여기서 진술조서를 읽으실 필요 없습니다. 예정된 신문 시간을 지켜주길 강하게 요구합니다."
"특검은 질문을 짧게 잘라서 하시고 증인에게는 사실 관계만 확인하세요. 지금 그게 유도신문밖에 더 됩니까?"
"매번 저희가... 특검 주신문이 끝나면 밤입니다. 피고인측 반대신문은 매번 시간에 쫓겨 이뤄지는데 그 부분 감안해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에서 특검의 비협조적 재판 태도를 지적하는 재판부와 변호인단의 발언들이다.
지난 4월 7일 시작해 7월 21일까지 43차례 열린 이재용 재판이 내달 4일 120일 만에 종료될 전망이다. 하지만 내달 4일 결심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원활한 재판 진행에 비협조적인 특검 때문이다.
당초 이재용 재판은 특검법상 5월 말에 끝나야 했다. 특검이 제시한 10만 페이지 분량의 '증거'와 40명 넘게 신청한 '증인'으로 인해 재판부는 "검토해야 할 증거가 많은 탓에 현실적으로 특검법에서 정한 기일을 지킬 수 없다"며 7월 말 결심을 예고하기도 했다.
특검이 계속해서 추가 증거를 제출하고 추가 증인을 신청한 영향으로 결심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이재용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진동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결심 기일을 8월 2일로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예고는 일주일도 못 되어 재차 수정됐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이달 27일~28일 피고인신문, 다음달 1일~2일에는 공방기일 갖고 4일 결심공판을 진행하겠다"고 정정했다. 변호인단은 당초 10여명으로 예정했던 증인을 8명으로 줄이며 재판 진행에 협조했음에도 재판부가 예정대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던 셈이다.
일정에 맞추고자 개별 재판 시간을 더 늘리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이재용 재판은 14차 공판이 14시간, 19차 공판이 15시간, 21차 공판이 16시간, 37차 공판 16시간 30분 등 마라톤 재판을 이어오고 있다.
재판부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재판을 열고 있지만 재판이 치밀하게 이뤄져 재판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재판 초기 서류증거를 확인하는 '서증조사'에서 특검은 사건 관계자들의 검찰 진술조서, 문자메시지 등의 자료를 하나하나 읽는 전략을 취했다.
재판부가 "하나하나 나열해 읽을 필요 없다.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만 정리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도 준비해온 자료를 천천히 읽는 작업이 반복됐다.
사건 관계자들을 직접 불러 청취하는 증인신문에서도 비효율적인 진행이 이뤄졌다. 특검은 진술이 이뤄진 증인을 불러낸 뒤 이미 서증조사에서 읽었던 진술조서를 증인 앞에서 다시 읽는 모습도 연출했다. 이에 재판부는 "증인 신문 시간 좀 지켜 달라. 여기서 진술조서 읽으실 필요 없다"는 지적을 반복했다.
증인신문에서 특검은 한 번에 서너 가지 내용을 동시에 질문하는가 하면 사건 정황을 설명하면서 자신들의 해석을 제시하고 동의하는지 여부를 물어보기도 했다. 재판부가 "특검은 질문을 짧게 잘라서 하시고 증인에게는 사실 관계만 확인하세요. 지금 그게 유도신문밖에 더 됩니까." "특검, 지금 그건 질문이 아니라 특검 측 의견이죠!"라며 꾸짖었지만 이후로도 특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예 재판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증인을 신청하거나 증인에게 공소 내용과 관련 없는 질문을 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23차 공판에서 특검은 환경부 김모 사무관을 증인으로 소환했다. 김 사무관에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특혜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했지만 김 사무관은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회사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진술서의 내용도 모두 특검의 설명이다. 내가 알 수 있는 점이 아니라고 진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27차 공판에 출석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에게 특검은 한 시간 여 동안 "롯데에서 돈을 돌려준 경위를 아느냐" "왜 SK에서 돈을 받지 않았느냐" 등 롯데와 SK그룹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에 증인은 손을 들고 재판부에게 "제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 재판은 삼성 재판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물론 특검이 재판에 중요도가 인정되는 증거를 제출한 적도 있다. 지난 21일 43차 공판에서 특검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추가 증거를 제출했다. 양재식 특검보는 "재판이 막바지이지만 청와대 문건을 추가 증거로 제출하겠다"며 "(추가 증거 채택에) 변호인단이 부동의할 경우 작성자 두 명을 추가 증인으로 신청해 증인신문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재판부도 "제출된 문건은 늦게 제출할 사유가 인정돼 배척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증거 채택에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다만, 이 문건의 경우 형사재판의 증거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다각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