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 진술에 속하는 안종범 수첩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5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증인으로 출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은 특검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중간다리 역할로 지목한 인물이다.
안 전 수석은 삼성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1차 독대를 가졌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날 독대는 약 5분 간 진행됐는데 이 자리에서 청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특검의 주장이다.
안 전 수석은 "당시 행사를 수행하긴 했지만 독대가 이뤄진 사실은 몰랐다"며 "박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과 면담을 가지면 사후적으로 있었던 일을 알려주고 그것을 기록하지만 개별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에게서 승마와 관련된 지원이나 삼성물산 합병에 있어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를 열어 찬성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승마 지원해서 들어본 것이 없고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국민연금은 내 소관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전 재판에서 "국민 대표 기업인 삼성이 엘리엇으로부터 공격 받는다기에 안타까워 지켜보라 지시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말을 들은 적 있느냐는 특검의 질문에도 "없다"고 회상했다.
청와대에서 삼성물산 합병 관련 사안을 챙겨본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 전반에서 투자자국가소송(ISD)에 대한 우려가 컸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할 경우 엘리엇이 국민연금에 ISD를 제기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며 "상황 경과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향후 대응방향 등을 사후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이 작성한 수첩의 증거효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핵심증거로 제시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1차 독대 내용이 적혀 있다"며 "하지만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전해들은 말을 적은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에서 재전문(再傳聞) 진술을 기록한 서류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를 통해 전해들은 진술'인 재전문 진술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4년 대법원에서는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전문 진술에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강조했고 이 때문에 2010년 금융권 고소·고발 사건에서도 무혐의 처분이 나온 바 있다.
변호인단은 "수첩 내용은 이 부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닌 데다 원진술자가 박 전 대통령이다. 수첩 내용이 증거로 인정되려면 형소법 312조에 의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며 "수첩이 적법하게 수집됐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전 수석은 "첫 1권은 자택 압수수색에서, 16권은 보좌관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특검이 참고 목적으로 요청해 가져갔다가 빼앗겼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고 수첩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사건과 관련 없는 기밀이나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 등이 공개되면 국가적 손실이 있을 수 있어 항의했다"고 덧붙였다.
특검은 2015년 7월 27일 기록된 수첩 내용을 제시하며 "'삼성·엘리어트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권익, Global Standard 대책 지속 강구' 등의 메모가 있는데 당시 이뤄진 회의 회의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조사를 하며 수첩에 세세한 내용이 적혀 놀랐다. 증인은 원래 수첩에 빨리 요점만 잘 적느냐" 등의 발언을 하며 수첩 메모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종범 수첩에 대해 재판부는 "증인신문 끝난 후 증거 체부를 결정하겠다"며 "증거 체부를 위한 목적으로 수첩을 제시하는 것은 허용한다"고 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