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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눈물겨운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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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문득 하늘을 쳐다볼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있었다. 호젓한 산길을 거닐 때였다. 덤불숲 사이로 나리꽃 한 줄기가 여름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다. 주홍빛 불꽃이 너무도 화사하고 눈부셔, 그 튕겨내는 빛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들고 눈을 비비게 되는 것이다. 바람 한 자락에 하늘거리는 가녀린 꽃. 그 몸짓이 반갑고 애틋한 것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약육강식의 덤불숲 그늘에서 고난을 얼마나 참아왔던 걸까. 또 얼마나 몸부림쳤던 것일까.

그렇게 꽃피우기까지 모진 삶을 겪어왔을 나리꽃. 꽃잎에 대롱거리는 이슬이 눈물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그 나리꽃을 바라보며 나는 기다림을 생각한다. 치열한 땅을 짚고 혼자 힘으로 꽃피운 생명의 신비! 그 기적의 힘은 필시 기다림에서 나왔을 거라는 것. 고통스럽기에 기다림은 길었지만 참고 견디면 저 눈부시도록 찬란한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는 것. 삶이란 어쩌면 어떤 기다림을 위해 고통을 겪으며 피어나는 나리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게 이런 걸까.

사람들은 기가 막힌 일을 당했을 때 하늘을 응시한다. 원망의 눈길이다. 더러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주저앉는다. 나리꽃은 그러나 비바람이 불든, 천둥 번개가 치든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참고 견디며 기다렸기에 그 기막힌 일을 당하고도 기어이 활짝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침묵하면서 기다린 건 아니다. 폭풍이 몰아치면 쓰려지지 않으려 그 연약한 뿌리로 땅을 움켜잡아야 했으며, 햇빛을 받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줄기의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나리꽃은 그런 시련 속에서도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정중동(靜中動)! 조용하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였다. 잠잠하다고 해서 움직임이 더디고 굼뜬 것은 아니었다. 뿌리와 줄기는 때론 메마른 땅에서 이슬 한 모금을 축이려 밤새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꽃피웠기에 불꽃같은 저 주홍빛 꽃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타오르는 용광로에서 금을 뽑아내는 연금술사를 연상하게 한다. 그 정중동의 의식 밑 심층에 용광로 같은 들끓는 기다림의 물결이 흐른다.

얼마나 값지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태인가. 나리꽃의 기다림은 준비하고 노력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기다림을 노력의 과정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목표 없는 노력은 없고, 참고 견디며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눈부신 꽃이라는 행선지가 있는 까닭일 것이다. 노력 없이 단순히 기다리면서 꽃피우겠다는 건 나리꽃에겐 웃긴 얘기다. 그건 방황이다.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과 같다. 희망의 꽃은 노력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기다림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뜸을 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침묵하는 건 아니다. 밥 짓는 광경을 보라. 재래식 가마솥이든 압력밥솥이든 첨단 전기밥솥이든 뜸들임이 없다면 밥은 설어버릴 것이다. 밥알들이 이리저리 뒤집히고 요동친 다음에, 기다림이라는 김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밥을 차지고 맛있게 익게 하는 이치다. 같은 쌀이라도 뜸들임 정도에 따라 밥맛이 천차만별인 까닭이다.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세공사의 다듬기 과정과도 같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람에 나부끼는 나리꽃을 바라보면서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인생이란 원래 험난하다.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바람과 물결이다. 목적지를 향해 순항하기도 하고, 맞바람을 만나면 표류하기도 한다. 때론 풍랑 속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게 인생좌표의 숙명이다. 나리꽃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내일의 기다림이 있기에, 그리고 오늘 그것을 하나하나 성취해나가기에 세상 살맛이 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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