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9차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오세성 기자
금융위원회의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불허 방침에 청와대가 동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9차 공판에는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삼성에서 제출한 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해 금융위가 불가하다는 사전검토 의견을 내놓자 청와대가 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는 삼성과 청와대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을 위해 금융위에 압력을 가했다는 특검 주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특검은 정 부위원장에게 안 전 수석에게 삼성생명 금융지주 전환 계획을 보고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고 물었다. 정 부위원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에게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승인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했다"며 "이에 대해 안 수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삼성에서 사전검토를 요청했고 어떠한 사항이 문제가 되는지 정리해 구두로 보고했다"며 "별도 코멘트가 없기에 금융위 판단에 동의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정 부위원장의 답변에 특검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면 불허할 것이라 보고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정 부위원장은 "정부가 결정을 내릴 땐 공식적이고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사전검토는 그 자체로 비공식적인 상황"이라며 "부정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충분히 전달했다"고 받아쳤다.
특검이 "보고가 수차례 이뤄졌다. 증인이 보고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금융위원장이 다시 보고했다"며 "안 전 수석이 이 사안에 관심이 많았던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정 부위원장은 "나는 최종 결정이 나기 전에 동향을 보고한 것이고 위원장의 보고는 최종 결정 내용에 대한 것"이라며 "안 전 수석이 너무 관심을 안줘서 서운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삼성생명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다. 금융시장 주요 이슈라 금융위는 무척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데 안 전 수석은 우리와 같이 고민해주지 않는구나 싶었다"며 "어떤 부분을 더 확인해보라는 등의 지시사항조차 없어 서운했다. 특검 조사에서도 말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이 "특검에서 진술했는데 진술조서에는 빠진 것이냐"며 확인하자 정 부위원장은 "진술을 시작하기 전 김영철 검사에게 말했다"고 답했다. 특검 파견검사로 재판장에 함께 앉아있던 김영철 검사는 정 부위원장의 답변에 민망한 듯 웃어보였다.
이날 재판에서는 삼성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 계획안을 금융위에 제출하고 사전검토를 요청한 뒤 보인 반응에 문제가 없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간 특검은 금융위가 삼성의 계획안에 대해 쟁점사안이 있어 승인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음에도 삼성에서 원안을 고수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정 부위원장은 "사전검토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핵심 사안에 이견을 보일 수 있고 마지막까지 양측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며 "공식적인 승인절차도 아니고 비공식 협의인데 거기서 무슨 말 못하겠느냐"고 특검의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특검이 "이례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냐"고 재차 묻자 "특검의 이례적이라는 기준을 모르겠다"면서도 "공식적으로 접수한 후 원안을 고수하면 이례적이라 하겠지만 그 상황에는 적합지 않다. 비공식 협의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협의가 안 되어 공식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압력이 있었기에 삼성이 원안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인 것 아니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청와대의 압력은 일절 없었다. 이 정도 일은 흔하게 있다"고 답했다.
금융위원회 실무진에 이어 정 부위원장에 대한 신문에서도 삼성의 청탁이나 청와대의 개입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특검에 대한 기대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날 특검은 빈약한 증거를 만회하기 위해 7월 중순 이후로도 추가 증인을 신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