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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마당에서 비움과 채움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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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일전에 사진 한 컷이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어느 시골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안에는 고색창연한 한옥 풍물이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마음을 쉬어가게 해주는 곳은 한옥이 아니라 산그늘이 내린 숲속의 빈터, 그 집의 마당이다. 아늑하고 널찍한 것이 그 때 느꼈던 감성에 젖어들면 절로 평온해진다. 남는 게 사진이라고 했던가. 그냥 무심코 스치듯 찰칵 박은 사진 한 장이 도심생활의 메마른 내 마음을 오아시스로 적실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네 집 마당은 희로애락의 가족사가 흐른다. 그 흔적을 읽으려 사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서성거리면 낯설지 않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멍석에, 한가득 눈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멍석 위로 휙 훑고 지나가는 바람 한 자락이 시원하고 불타게 맵다. 마당은 다용도로 오버랩 된다. 아이들이 뛰놀면 동네 놀이터가 됐고, 장대를 세우면 마당은 빨래 건조대가 되어주었다. 때론 결혼식장으로, 잔치마당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사진 속의 마당은 내게 많은 걸 선사한다. 여백의 여유를 가져보게 하고, 풍경을 그려보게 하고, 마당을 거닐게도 한다. 왁자지껄하고 북적거렸을 마당. 지금은 고요하고 텅 비어 있다. 그 마당이 내 눈을 더욱 반짝거리게 하는 건 삶의 큰 지혜를 가르쳐주어서다. 한바탕 흥을 치르고 난 뒤엔 마당을 비워둬야 또 다른 뭔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비울수록 풍부해지고, 새로움이 샘솟는다는 비움의 미학! 그것은 신선한 삶을 노크하는 물결이고, 동력이며, 바람이다.

텅 빈 마당은 먼지만 풀풀거리는 공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빈 마당의 정적은 다음에 펼쳐질 더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폭풍의 전야다. 옛 조상들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마당을 늘 비워두었다. 비워두었기에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왔고, 흩어진 마음들이 하나로 모였다. 마당에 평상을 얹어 놓으면 달빛 아래에서 이야기꽃이 수북수북 피어났다. 케케묵어 식상한 얘기들은 흘러나가고, 신작 스토리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사진 속 마당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공원이나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득일 때가 있다. 이끼 낀 생각의 노폐물들을 털어내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생각의 꽃이 피어난 까닭일 것이다. 귓구멍 속의 귀지 덩어리가 무심결에 떨어져나가 귀가 밝아지듯 뇌력이 총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생각의 꽃은 언젠가 생활의 지혜로 만개할 것이다. 더러는 과학이 되고, 전설이 된다. 비움이란 뺄셈하듯 매번 마음만 먹으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쉽게 이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채움에 급급한 덧셈 시대에 비움이 어디 쉬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입고, 먹고, 듣고, 보고, 많이 갖고자 하는 덧셈의 욕망이 끝이 없는 것을. 일상들이 덧셈의 덫에 갇힌 형국이다. 버리는데 익숙하지 못해 장롱에 수년째 옷이 쟁여지고, 창고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채로 골동품마냥 박혀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해 번뇌하고, 발버둥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움의 마당을 그리워하면서.

나는 되풀이되는 일상의 번잡함을 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한다. 연초록빛 물감을 뿌려놓은 산과 에메랄드빛으로 너울거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시간이 길게 늘어나고 세상이 넓어진다. 영혼이 자유롭게 뛰놀 비움의 여백을 안겨주는 것이다. 가까운 강가에 나가 졸졸거리는 시냇물 음악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렬해지고 비워진다. 행복이란 비울 줄도 알고 채울 줄도 아는데서 싹트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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