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매물과 국내외 사모투자펀드(PEF)들의 투자금 회수용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피인수 대상기업의 인기는 극과 극이다.
인수합병(M&A)이 더딘 이유는 성장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지만,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M&A를 적극적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M&A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경제 전반에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 M&A 팔리거나, 밀리거나
14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기업 M&A 시장에서 쌓인 매물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거래가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골드만삭스 컨소시엄과 대성합동지주가 추진 중인 대성산업가스의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매각주관사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20일 글로벌 산업가스 업체와 SK 등 국내외 전략적투자자(SI), 사모투자펀드(PEF)를 비롯한 재무적 투자자(FI) 등 20개 안팎의 인수 후보군에 매각안내서를 발송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는 후보들이 없어 아직 예비입찰 일정도 잡지 못했다.
지난 8월부터 진행된 ING생명 매각 협상도 3개월이 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현재 ING생명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 호가) 방식으로 4곳 이상의 후보군과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인 JD캐피탈과 중국계 태평생명, 푸싱그룹, 안방보험 등이 시장에 알려진 후보자들이다.
KDB생명도 삼수에 나섰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지난달 13일 마감한 예비입찰에 외국계 자본 2곳이 응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는쪽은 9000억원은 받아야 손해를 보지 않지만, 사려는 사람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웨이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작년 말 매각 본입찰을 진행했으나 유력 인수 후보의 불참으로 현재 매각작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코웨이의 기대 매각가격은 3조원 수준이다.
하이투자증권 매각 작업도 미궁속에 빠졌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적정 매각가는 5000억∼6000억원 선이지만 현대중공업 측은 1조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현대시멘트(산업은행 채권단), 한국맥도날드(맥도날드) 등도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9일 마감한 금호타이어 매각 예비입찰에 총 10곳의 업체가 참여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열기였다. 내심 흥행 참패를 바랬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금호타이어 지분 42.01%의 시장가치는 6000억원대 중반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약 9000억~1조원 선에서 매각가가 결정될 전망이다.
관건은 개인 자격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들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향후 행보다. 박 회장은 "그룹을 재건하기 위해 금호타이어를 꼭 인수하겠다"는 다짐을 밝힌 상태다. 박 회장은 내년 초로 예정된 본입찰에서 채권단이 제시한 매각가 만큼 돈을 내면 금호타이어를 배타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경쟁 상대가 많아지면서 박 회장의 부담도 늘게 됐다.
반면 흥행에 상공한 M&A도 있다.
우리은행은 16년만에 민영화에 성공했다.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IMM PE,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7곳이 우리은행 지분 29.7%를 가져가기로 했다.
PCA생명은 미래에셋생명의 품에, 알리안츠생명은 중국 안방보험의 손에 넘어갔다.
동양매직은 SK네트웍스가 새주인이 됐다. 2014년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와 컨소시엄을 꾸려 동양매직을 3000억원가량에 인수한 NH투자증권 PE본부는 2년 여 만에 3000억원대 차익을 챙기며 '잭팟'을 터뜨렸다.
동부익스프레스도 동원그룹에 넘어갔다.
◆ 최순실 게이트 M&A까지 얼어붙나
삼성 롯데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많은 기업이 M&A시장에서 몸을 움츠린 상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도 문제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검찰의 수사가 주요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는 기업들의 경영활동 위축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달 'SK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돌연사)할 수 있다"며 사업·조직·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그 하나가 M&A전략이었다.
'자타공인 M&A 달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검찰수사가 끝나면서 M&A에 시동을 걸 준비를 해왔다. 신 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M&A를 포함한 투자규모를 4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재활전문병원 보바스요양병원 인수와 현대로지스틱스·파키스탄 펩시콜라 보틀링 업체 '라호흐 펩시코' 등도 인수검토 중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M&A도 잠정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들로서는 총수의 잇따른 소환과 조사가 부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문호 기자 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