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 교육업체가 임대한 선릉역 인근의 교육장. 이곳에 보내진 기업의 직원들은 이틀에 40시간 교육을 이수한 후 3일마다 시험을 봐야한다. 일정 점수가 넘지 못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이 같은 교육은 짧게는 2개월에서 6개월까지 계속된다. /김성현기자
기업 위탁 교육업체들이 저성과자, 권고사직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고강도의 교육을 실시해 사표를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기업이 위탁 교육업체를 통해 쉬운 해고를 시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손 쉬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위탁 교육업체는 기업 인사팀을 대상으로 한 사업설명회에서 "책임지고 (교육생들이)중도 사퇴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하기도 했다.
10일 서울 선릉역 인근에 있는 한 건물을 찾아갔다. 이곳은 위탁 교육업체들이 임대한 공동 교육장이다. 홈플러스, 동부대우전자 등의 직원 1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미래에셋생명, SK건설 등도 해당업체에 교육을 위탁한 바 있다.
교육생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앉아 인터넷 강의를 수강해야 한다. 한편의 강의는 평균 40시간으로 구성됐다.이틀 만에 교육을 이수한 후 3일째에는 시험을 치른다. 시험 점수는 출·퇴근 10점, 교육태도 10점, 객관식 30점, 주관식 50점으로 구성된다. 80점이 넘지 못하는 교육생은 경고 처분을 받는다. 경고가 누적되면 본사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교육장 뒤편에 앉은 여직원은 교육생이 일어서거나 외출을 할 때마다 기록한다. 특별히 자리 이탈을 제재하지는 않지만 감시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업체로부터 제공된 노트북에는 1000여개에 달하는 인터넷 강의가 설치돼 있다. 주로 마케팅, 기획, 경영과 관련된 내용이다.
위탁업체측은 각 개인 역량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강사 초빙이 아닌 자율 선택식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게 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들 강의는 실무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일부 강의는 시간이 많이 지나 현 실정과 맞지도 않았다.
교육생들은 적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매일 같은 교육을 반복한다. 반복되는 인터넷 강의와 시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교육생들은 결국 스스로 사표를 쓰게 된다.
한 교육생은 "20년 넘게 수리원으로 일하다가 2개월 전 회사의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교육장으로 보내졌다"며 "수십년간 제품수리만 해왔었는데 이곳에서는 마케팅, 경영 같은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한다. 점수가 80점이 넘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위탁교육 업체는 올 초부터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 위탁교육업체의 사업 목적. 하단에 '근로자 보호'라는 글귀가 보인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사표를 받기위한 교육이라고 호소한다. /김성현기자.
위탁 교육업체측은 단순히 본사의 요구대로 교육만 할 뿐 '사표 유도'등의 행위는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위탁업체 R사 관계자는 "이들 교육생들은 회사로부터 저성과자, 권고사직 대상자로 낙인 찍혀서 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시작부터 모든 교육 과정에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우리는 이들의 태도와 경력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기초 역량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스스로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변화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업무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하루 종일 교육만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틀에 40시간 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하루빨리 현직으로 복귀시켜주기만 바랄 뿐이다. 5~6명의 교육생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업무를 하지 않아 편하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한 교육생은 "혹시 복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며 "끝까지 버텨내 복직된 사람도 본사에서 수개월째 대기발령 상태라는 소문을 듣고난 후로는 더욱 절망적일 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또 다른 교육생은 "기업이나 위탁업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러한 분위기를 만든 정부를 원망하고 싶다"며 "기약없는 반복 인터넷 교육에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말했다.